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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7월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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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후원자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는 북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학생들을 먹이고 돌보는 것을 보고는 참 귀한 일을 한다며 후원 물품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후원 물품이라는 게 그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반지를 빼서 내게 주었다. 낡은 은반지라 돈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나는 북한분이 준 반지를 고이 간직했다.
내 제자 중에 징허라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조선족 학생이 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술고래였고 만날 싸움질을 하거나 남의 집 유리창을 깨기 일쑤였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나더니 자신의 삶을 주님께 내어 드렸다. 그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자신을 빚어 가시기를 기도했다. 그때부터 징허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징허는 한국말을 전혀 못해서 그 어머니가 답답해할 때가 많았는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배운 후로 우리 가족에게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을 잘해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어머니가 얼마나 기뻤는지 하루는 내게 편지를 보내오셨다. “엄마도 하지 못한 일인데, 우리 징허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엄마를 봐도 인사도 할 줄 모르고 만날 깡패 짓이나 하던 놈이 이제는 인사도 잘하고 한국말로 편지도 보낸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후 징허의 어머니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 나를 찾아왔다. “저는 사실 부모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징허가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 적도 없고요. 그러니 최 교수님이 징허의 양아버지가 되어 앞으로도 징허를 잘 지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홀몸으로 아들을 대학교육까지 시킨 그 어머니의 수고와 정성을 헤아리며 사양했지만, 그녀가 너무 간절히 부탁하기에 결국 징허를 양자 삼기로 했다. 그리고 조촐하게 양아들맞이 축하잔치를 열었다. 그때 나는 징허에게 북한분에게서 받은 그 귀한 은반지의 사연을 들려주고, 아버지가 주는 첫 번째 선물로 그 반지를 건네며 그 북한분처럼 가진 전부를 주님께 내어 드리는 인생을 살라고 이야기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