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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진 목사님은 우리 교계에서 주일 학교의 기초를 닦으셨던 귀한 목사님 중 한 분입니다. 일찍이 안 목사님이 저술하신 성경 이야기책은 우리나라 주일 학교 학생들에게 깊은 감화를 준 바가 있습니다. 한번은 안 목사님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어떤 사람이 “안 목사님, 목사님께서 칠십 평생을 사시면서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였다고 생각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가장 행복했던 때요? 예, 저는 주저 않고 말할 수 있어요. 그때는 우리 가족이 기가 막히게 고생을 할 때였습니다. 6.25전쟁 때 대구로 피난을 가서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식량이 없어 굶다시피 했어요. 낮에는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구호식량 창고 근처에 가서 행여나 운반하다가 흘린 양곡이 있나 해서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 왔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쓸어 가지고 온 것 중에서 쥐똥, 돌멩이, 티끌 등을 골라냈지요. 그러면 깡보리가 한 됫박 정도 남았어요. 그것을 밤새 물에 담가 불려서 이튿날 아침에 밥을 하여 식구들이 몇 숟가락씩 나누어 먹었어요. 그것으로는 배가 너무 고파서 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전쟁의 와중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가족들을 살려 주신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했고요. 그때만큼 서로를 깊이 사랑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의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어요.”
그 어려운 세월을 넘기면서 안 목사님은 자녀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고 합니다. 훗날 어느 사람이 그분의 자제들에게 “얘들아, 너희들 그때 참 고생이 많았지? 그 힘든 것을 이기고 잘 자랐구나! 어떻게 너희들이 이렇게 잘 자랄 수가 있었니?” 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안 목사님의 아들이 대답하기를 “예, 저희들은 배를 곯기는 했지만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밤마다 성경 이야기를 해 주셨거든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는 밥 대신 꿈을 먹고 살았던 것 같아요”라고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