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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유엔 본부에는 흥미로운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에 따라 본부 건물을 이곳저곳 둘러다 보면 특별히 유엔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이런 곳에서 근무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투어 중에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곳 중 하나는 전 세계 다양한 인종의 모습이 그려진 ‘황금률’(The Golden Rule)이란 모자이크 작품이다. 유엔설립 40주년을 기념해서 미국의 예술가 노만 록웰이 만든 것을 당시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낸시 레이건 여사가 유엔에 기증했다.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 위에는 한 줄의 영어 문장이 적혀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
이 구절이 붙여진 그림이 왜 ‘황금률’이라고 불릴까? 바로 내가 아닌 ‘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행동할 때 우리에게 ‘황금’보다 귀한 유익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흔히 작심삼일이란 표현을 쓴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유익을 추구하다 보면 아무리 잘 짜인 계획이나 목표도 3일을 넘기기가 어렵다. 하루에 30분씩 책을 읽는다고 해 보자. 수많은 유혹이 올 것이다.
반면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해 보자. 내일까지 누군가의 부탁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요약해야 한다. 물론 힘들고 피곤하겠지만 대부분 어떻게 하든 요약문을 다음 날 완성해낼 것이다. 친구나 아는 사람이 주말에 이사를 도와달라고 했다 생각해 보자. 당일이 되니 밀린 잠도 자고 싶고 일어나기가 귀찮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세운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남을 위한 행동에 관대하다. 그리고 그 행동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성품과 태도, 그리고 역량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또한 많은 경우 목표는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닌 지식이나 스펙을 쌓기 위한 것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은사와 달란트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할 때 개발된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일단 남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 ‘황금’과 같은 가치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