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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규명’이 아닌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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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네를 만난 구더기가 깜짝 놀랐다. 자기에게는 단 하나도 없는 다리가 지네에게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그 많은 다리들이 조금도 엉키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던 구더기가 지네에게 물었다.
“얘, 지네야! 넌 정말 다리가 많구나. 그런데 네가 움직일 때 그 많은 다리들을 어떤 순서로 움직이니?”
그것은 지네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제야 지네는 자기 다리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자기 몸에 그렇게 많은 다리들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지네는 낭패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많은 다리들을 대체 어떤 순서로 움직였는지, 제일 먼저 움직이는 다리는 몇 번째 다리이고 그 다음에는 또 몇 번째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했다. 갑자기 다리 하나 없는 구더기가 부러워지면서, 자기 몸에 붙어 있는 그 많은 다리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꼼짝도 못하고 한동안 멈추어 있던 지네에게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제껏 어떤 순서로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서도 잘만 걸었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이번에는 믿음이 생겼다. 여태까지 잘만 걸어왔으니 아무리 다리가 많아도, 다리들을 움직이는 순서를 규명하지 못해도 예전처럼 계속 잘 걸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다.
지네는 그 믿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리들을 움직이는 순서는 여전히 밝히지 못했지만, 지네는 옛날처럼 멋지게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규명’이 아니라 ‘믿음’이 걷게 한다는 교훈이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규명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달리 하나님이시기에 한 분이시지만 또한 세 분이실 수 있고, 세 분이시지만 그러나 한 분이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그런 분이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그 신비로우신 하나님에 대해 경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