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5년 09월

암은 차라리 복이다

과월호 보기

항암 치료가 거듭될수록 하루 종일 구토하는 신세가 되니 내 자신이 손톱만큼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 옆에서 간호하는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고, 무엇보다 입 안이 헐어 입을 벌리기조차 어려웠다. 그러자 내 입에서 저절로 “하나님!”이 흘러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성경을 읽고 기독교방송을 보는 것뿐이었다. 예전에 의무감으로 성경공부를 할 때, 로마서는 성경의 진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로마서 8장이 제일이라고 했다. 어떤 선배 의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로마서 8장 30절은 꿇어 엎드려서 읽어야지 그냥은 못 읽겠다.”
이 말이 기억나서 나도 로마서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로마서의 다음 구절을 읽었을 때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께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롬 9:20).
그 순간, 나는 내가 하나님께 지음 받은 물건이라는 사실이 믿어졌다. 지음 받은 그릇은 지음 받은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 나를 금 그릇이 아니라 간장 종지로 만들었냐고 주인에게 따질 수 없다.
그릇으로서 주인에게 대들지도 못하려니와 주인이 쓸모없다 여겨 깨뜨려 버리면 그나마도 운명을 다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지음 받은 대로 주인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질그릇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반문할 자격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나님, 제가 지음 받은 물건이로군요. 제가 주님의 지음을 받았으니 주님의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속으로는 교만, 아집, 단단한 자아로 둘러싸인 나를 깨뜨리셨다. 하나님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셨다는 듯, 나를 안아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인 만남의 순간이다. 너무도 늦은 회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