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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1940년대 독일 나치에 의해 대량 학살의 위기에 놓인 유대인을 구해낸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의 삶을 그린 영화다.
독일군에 의해 잔혹하게 죽어가는 유대인을 보며 연민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쉰들러는 마침내 사재를 털어 1,100여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행 기차로부터 구원해 낸다. 그럼에도 그는 ‘왜 나는 많은 유대인을 구해 내지 못하였는가?’ 하며 자책의 눈물을 흘린다.
유대인들이 쉰들러에게 감사의 뜻으로 건넨 반지에는 탈무드의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 구원한 1,100명이 아닌 구원하지 못한 한 명 때문에 오열하는 쉰들러의 심정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심정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 성공에 오염되면 영성이 흐려지고 감정이 메말라 버린다. 좋은 자리, 좋은 위치에 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끼고 울분을 토해 내는 일은 흔하지도 쉽지도 않다. 심지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조금만 배려하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일도 사람들은 쉽게 외면한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심코 지나가는 일이 내가 가져야 할 관심의 대상이요, 사랑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구속하신 하나님의 자녀를 내 생각, 내 마음대로 판단하며 사랑 안에서 수용하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진리보다는 명분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실족시키지는 않았는가? 혹은 진리를 전한다면서 날카로운 가시와 쓴 뿌리를 만들지는 않았는가? 하나님보다 세상이 더 크게 보이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세상에 존재할 가치도, 목적도 없는 우리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용하여 일하기를 원하신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천금처럼 귀히 여기시며 사랑해 주신다. 그 사랑을 받았기에 ‘최소한 한 명은 더 구원할 수 있었는데’ 하는 자책과 후회를 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