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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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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5일에는 최순기 선교사의 장례식이 있었다. 몽골에 온 지 13년이 되었고, 63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미국에서 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몽골 선교사로 오신 분이다. 그의 선교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의 몽골에서의 사역엔 항상 성령의 불 같은 역사가 함께했다. 그뿐 아니라 북한 동포들을 향한 상한 심령이 절절이 묻어있는 사역을 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항생제를 기증받아서 북한에 전달하는 일을 여러 차례 하였다. 그리고 항생제를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셨다가 그곳에서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그의 소탈한 웃음, 열정을 다하는 설교, 함께 뛰면서 키운 제자들, 사역자들. 몽골 새생명교회는 그의 열정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 “내가 죽으면 몽골에 묻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장례식은 천국에 입성하는 자리이니 ‘할렐루야’를 불러 달라는 유언이었다. 마치 자신이 언제 부름을 받을지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는 자신의 장례식까지 준비해 두고 가셨다. 장례식에서 우리 한국 선교사들은 모두 ‘할렐루야’를 불렀다. 그는 그의 마지막 생을 찬란하게 장식하고 천국으로 입성한 가장 복 있는 선교사였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다 가신 최 선교사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부러워하고 또 부러워하였다.
그가 키운 교회 지도자들은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오열했다. 그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새생명교회에는 그가 세운 지도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교회를 섬기고 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 땅을 떠나는 순간이 축제의 시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할렐루야’를 불러 준다면 감사하겠지만, 찬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힘들 것 같고 해서 찬송가 492장이 적당할 듯하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해질 무렵 밥 먹으라고 부르시는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달려가는 아이처럼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기쁘게 본향인 안식처로 돌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