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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경청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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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1분에 120단어를 말하지만 1천 단어를 들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120단어를 말하는 동안 880단어의 공백은 딴 생각으로 채워집니다. 좋은 연사는 아이디어로 청중의 딴 생각과 경쟁합니다.
‘누군가 미리 삶을 사는 법을 알려 줬다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합니다. 혹시 누군가 이미 말해 줬음에도 내가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돌아봅니다. 침묵을 이야기하며 소리치고 있고, 소통을 이야기하며 귀를 막고 있는 것이 바로 내 모습입니다. 당신이 세상에 귀 기울일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 해줄 말이 떠오를 것입니다.
분명 세상은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신은 그 이야기가 남을 위한 이야기라고 무시해 버립니다. 우리는 모두 잘못 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신의 말이 아니라 내 생각에서 나오는 나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끔 소리를 줄이고 영화를 봅니다. 그러면 놓쳤던 그림들이 보입니다. 때로는 그 그림들이 소리보다 더 크게 말합니다. 귀로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습니다. 눈으로 읽고 가슴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다 잘되고 있다고 말하는 당신의 이마에 근심으로 접히는 주름을 보겠습니다. 몸짓이 보여 주는 언어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좋은 경청을 하려면 나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더군요. 먼저 당신의 세계로 들어가야 조금씩 들린다더군요. 그래야 당신의 마음이 보인다더군요.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서 빠져나가기 이렇게 힘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상담전문가 제임스 설리번 신부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사랑’에 ‘경청’을 대입해 넣었습니다. 경청은 참고 기다립니다. 친절합니다. 시기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경청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경청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