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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추도예배에 참석하여 비로소 깨달은 것은 목회한 지난 30년 동안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 아버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아버님이 너무 약해 보이셨습니다. 설교해 주신 최호순 감독님께서는 아버님을 성자(聖者) 같은 분이라고 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착하기만 하셨지, 큰소리 한번 해보지 못하시고 화 한번 내지 못하시는 답답한 아버지셨습니다.
저는 아버님같이 목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제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하고 비로소 깨달아집니다. 이따금 조급해지고 화가 나고 불끈하고 성질이 치밀어 오를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심하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아버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들이니 그저 아버지를 닮은 것이 아니라 목회의 결과까지 보았기 때문에 지혜가 생긴 것입니다.
어제 추도예배 후 내내 ‘나의 장례식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저는 이미 장례식을 치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진정 저의 주님으로 영접했을 때, 저는 제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아버님 장례식 때 또 한 번 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장례식 내내 설교하시는 목사님이나 조사(弔使)를 하시는 분들이 “유 목사님은…”이라고 하며 여러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이 아버님에 대한 호칭이 아니라 저를 지칭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저는 이미 장례식을 두 번이나 치렀습니다. 장례식을 두 번이나 치르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최호순 감독님이 택하신 본문이 히브리서 11장 5절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그대로 하늘로 옮겨진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사는 사람은 에녹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갈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