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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신사 한 사람이 야구장 앞을 지나며 서서히 차를 몰고 있는데 갑자기 야구공 하나가 굴러 왔다. 급정거를 한 신사의 자동차 앞으로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와서 사과를 했다.
“아저씨,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상대 선수가 홈런을 쳤거든요.”
신사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면서 상대방이 홈런을 날렸는데도 불쾌해 보이지 않는 꼬마들의 순진함에 반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얘들아 너희들은 홈런을 맞았는데도 서운하지 않아?”
“서운하다니요? 원래 그 아이는 홈런을 잘 치는데요, 뭘.”
아이들은 공을 주우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신사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건 너희 팀 투수가 잘못 던졌기 때문이 아니니?”
“아니에요. 우리 팀 투수는 최선을 다했어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요.”
“그럼 지금 점수가 어떻게 되니?”
“우리 팀이 8:0으로 지고 있어요.”
“그래? 그래도 실망스럽지 않아?”
“왜 실망을 해요? 우린 아직 한 번도 공격을 하지 않았는데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들이 소리를 내면서 야구장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고 한다. 한동안 그 신사는 차 안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왜 실망을 해요? 우린 아직 한 번도 공격을 하지 않았는데요.”
그 아이들의 말처럼 우리는 작은 것에 실망할 이유가 없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아무도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염려는 시간 낭비이자 에너지 낭비나 다름없다. 어린아이들을 보라. 전혀 염려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염려라는 개념조차 크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들은 염려를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