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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요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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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생이 기차에서 요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신사가
비웃듯이 물었다.
“학생은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 삼 일 후에 다시 나왔다는 그 얘기를 믿는가?”
“그럼요.”
“어떻게 그 터무니없는 얘기를 믿을 수 있지?”
“자세한 것은 천국에 가서 요나에게 물어보지요, 뭐.”
“그 친구 지옥에 가 있으면 어떡하지?”
“그럼, 아저씨가 물어보면 되겠네요.”

요나는 누구인가? 성경에 언급된 설명은 ‘아밋대의 아들’이 유일하다. 그것은 아마도 요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요나에게 맡겨진 사명은 무엇인가? ‘아밋대’라는 말은 ‘아멘’, 즉 진실이라는 뜻이다. 이 진실이라는 사람의 집에 아들이 한 명 태어났는데 그 이름이 ‘요나’이고 ‘비둘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한 마리 비둘기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하여 이 땅 구석구석에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아들을 기대했던 아버지의 열망이 ‘요나’라는 이름 속에 담겨 있다.
문제는 요나가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게 살지 못했다. 더욱 큰 문제는 요나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요나의 불순종은 나의 불순종이고, 요나가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더 나아가 우리 교회의 모습이고 한국 교회의 모습이며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요나는 세상의 신음 소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신음 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가슴앓이를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가슴앓이를 보고 사는 사람, 그가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