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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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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제와 아픔이 있을 때 더욱 주님 앞에 나아간다. 하지만 그분 앞에 나아갈 수도, 그 앞에 엎드릴 수도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 버릴 때가 있다.
신음 소리조차 내기 힘든 그때, 마태를 찾아 주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 우리를 찾아오실 뿐만 아니라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신 것처럼 우리 집에 머무신다.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잠을 청하신다. 아니 예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집 어느 곳에 자리를 펴시고 하루 종일 우리의 삶에 동참하고 계셨다.
어찌 보면 이 땅의 모든 문제는 집안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부부가 그저 한 집에 살고 있을 뿐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면 깊고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집안에서 이러니 남편은 직장에서도 작은 일에 흥분하고 부하 직원을 어렵게 한다. 아내도 종일 마음을 잡지 못한다.
논쟁과 다툼은 부부의 마음을 갈라놓고, 그 속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갈 길을 몰라 방황하며 거리를 떠돈다. 그러다 마음의 폭풍을 다스리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가정의 분열은 사회와 학교를 모두 깨뜨린다.
우리가 가정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도 주님을 만날 수 없다. 가정을 포기하는 것은 주님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주님은 여전히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바울과 마태, 모두 주님이 부르신 제자였다. 그러나 마태는 죄인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마음 편히 이웃을 만나거나 사회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사회적 외톨이였고, 바울은 최고의 가문에서 최고의 학문을 배워 율법적 엘리트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살아온 환경과 사회적 위치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났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마태는 시장 바닥에서 주님을 만났다. 각자 다른 삶 속에서 각자 다른 방법으로 주님을 만났지만 두 사람 모두 그 만남의 자리에서 주님의 긍휼도 만났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절대 한 배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주님의 자비하심이 그들을 모두 순종의 배에 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