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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때문입니다.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깨닫지 않고는 받을 수 없는 감동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아무리 잘해 줘도 감사가 별로 없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야, 혹은 결혼해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할 일을 하고 당연한 대가를 받는 사람도 은혜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직장인은 월급을 받으면서 나 같은 사람한테까지 월급을 준다고 감동하지 않습니다.
유독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만이 은혜의 삶에 젖습니다. 왜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해 주셨나,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시나, 눈물짓습니다. 은혜는 깨닫는 만큼 받습니다. 크게 깨달으면 크게 받고 적게 깨달으면 적게 받습니다.
은혜는 기억하는 만큼 가슴에 차오릅니다. 내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은혜가 강물처럼 흐릅니다. 이 은혜는 놀랍게도 고난 면역력을 극대화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오직 이 은혜의 힘으로 환난과 궁핍과 핍박과 기아와 감옥을 다 견뎌 냈다고 증언합니다.
세상은 조직과 돈으로 일합니다. 교회도 세상 풍조를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돈과 조직, 심지어 권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릅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합니다. 성령과 사랑으로, 순결과 인내로 모든 것을 겪어 냅니다.”(고후 6:1~10) 그는 마치 은혜의 위대함을 입증하려는 듯 고난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바울은 신앙의 역설을 웅변합니다. “우리를 보시오! 우리는 속이는 것 같으나 진실하고, 무명한 거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거 같으나 살아 있습니다.”(고후 6:9) “근심하는 것 같아도 언제나 기쁩니다. 가난해 보여도 오히려 수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다 가진 사람입니다.”(고후 6:10)
지난 2천 년간 이런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고, 나 같은 사람까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