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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한 생애를 살면서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든 탈진 상태를 경험할 때가 있다. 맥스 루케이도는 현대인의 탈진에 대해서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스트레스라는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도망가다가 어느 마을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걱정이라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걱정이라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치면서 도망하여 어느 곳으로 들어갔는데, 거기는 피로라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또 도망을 쳤는데 결국 들어간 곳은 더 이상 앞으로도 뒤로도 퇴로가 보이지 않는 탈진이라는 마을이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피해서 어디론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지만 결국은 피곤과 걱정이라는 단계를 지나 더 이상 퇴로가 보이지 않는 탈진에 빠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녀들 중 누구도 기진맥진이라는 탈진의 교차로에서 주저앉기를 원치 않으신다. 나아가 우리가 탈진이라는 깊은 웅덩이에 빠지기 전에 먼저 피할 길을 내어 주시며 결코 누수 없는 인생을 살기 원하신다.
주님은 멋진 차를 주시면서 열쇠도 주지 않고 그 차를 밀고 다니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그 멋진 차를 받고도 밀고 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고린도 교인들이 그런 형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해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라고 경고했다. 구원은 받았지만 성령으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차를 받았지만 열쇠를 넣고 시동을 걸지 않는 사람, 플러그는 꽂혀 있지만 스위치를 올리지 않는 사람과 똑같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탈진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탈진이라는 웅덩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피할 길을 주신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의 전류는 공급되고 있다. 문제는 아직까지 우리가 플러그만 꽂아 놓은 채 스위치를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느헤미야서의 말씀을 보며 은혜의 전류에 스위치를 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