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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여섯 살 때 교회에 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목사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면 주일학교에서 과자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아들을 타일렀다.
“아들, 이러면 안 돼. 교회에서 뭐든 더 받으려고 목사 아들이라고 얘기하고 다니지 마. 알았지? 그냥 ‘저는 타너예요!’라고 해. 더 말할 필요 없어. 엄마 말 알겠지?”
아들은 “네, 엄마!”라고 대답했다.
그다음 주일에 교회에서 한 부인이 그에게 물었다.
“너 혹시 목사님 아들 아니니?”
타너는 잠시 자신의 딜레마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엄마는 아니랬어요.”
우리는 자신을 최대한 좋게 보이도록 진실을, 적어도 그 일부를 의도적으로 재배치하려 한다. 좋은 의도로 시작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거나 자신이 좇는 바를 얻으려고 결국 진실을 뒤틀고 만다.
사소한 하얀 거짓말과 반쪽짜리 진실이 모여 곧 생활 방식이 된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길을 조작하게 되면 하나님을 향해 출발했어도 결국 표류하게 된다. 아주 미세한 어긋남이 진실하려는 본래 의도에서 우리를 점점 멀어지게 한다.
나른한 여름 오후, 물 위에 한가롭게 떠 있어 보았는가? 햇볕을 쬐는 데 이것보다 느긋한 방법도 없다. 우리 가족은 해변으로 휴가 가길 좋아한다.
오래 전, 우리는 여느 때처럼 물 위 고무보트에 떠 있었다. 30분쯤 지났을 때, 해변 쪽으로 고개를 돌려 우리 의자와 파라솔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떠내려 왔던 것이다! 물에서 신나게 노는 동안 눈치 챌 틈도 없이 해류에 떠밀려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 와 있었다. 표류는 언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에 단단히 닻을 내리지 않으면 물 위에 떠다니는 나무토막처럼 계속 이리저리 떠밀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