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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선교훈련을 마치고 선교지인 캄보디아로 향한 한인 선교사 가족이 캄보디아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일가족 여섯 명 중에 선교사님 부부와 자녀 둘이 그 자리에서 순교하고, 나머지 자녀 두 명은 위독한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와 아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하나님은 선교지도 아니고 선교지로 가는 길목에서 순교를 허락하셨을까? 안타깝고 이해하기 힘든 죽음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다른 건 몰라도 부모와 형제를 동시에 잃어버리고 남은 두 명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음 날 아침에도 남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떻게든 그들을 돕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2013년 겨울, 내 이메일에 낯선 편지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메일을 열어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러했다.
2013년 1월,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 갈 일이 있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병원에 소정의 기부금을 드리면서 혹시 선교사님이나 선교사님 자녀들 중에 치료비가 모자라는 환자가 있으면 사용해 달라고 부탁드렸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앞의 메일은 바로 그 대학 병원에서 보낸 편지였고, 놀랍게도 2013년 1월의 기부금이 2013년 여름 캄보디아에서 교통사고로 순교하신 선교사님 자녀들의 치료비로 쓰였던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고, 오래 사는 것이 복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죽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리고 남겨 둘 자들을 이 땅에 남겨 두셔서 여전히 주님의 일들을 행하게 하신다.
우리가 아직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무언가를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