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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공의와 자비 둘 다 지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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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루케이도가 맞나, 루카도가 맞나?” 공식적으로는 ‘루케이도’가 맞다.
이런 혼란 때문에 간혹 난처한 순간들이 있다. 교인 한 사람의 직장에 심방을 갔을 때의 일이다. 다른 직원이 나를 알아봤다. “맥스 루카도 목사님!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 처지에 발음부터 고쳐 주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서 그냥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직원들 몇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틀린 발음도 반복됐다. “샐리, 이분이 맥스 루카도 목사님이에요.” “조, 맥스 루카도 목사님입니다.” 나는 그저 웃으며 공손히 인사했다.
그러나 진퇴양난의 위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 교인을 만나자 대화의 축이 그쪽으로 넘어갔다. “지난주에 집사람과 함께 목사님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를 나오면서 목사님 성함을 어떻게 발음할까 그런 얘기를 했지요. 루케이도가 맞습니까, 루카도가 맞습니까?”
진실을 말하자니 여자가 난처하게 될 것이고, 거짓을 말하자니 남자한테 잘못 가르쳐 주는 꼴이다. 여자한테는 관대하고 남자한테는 솔직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동시에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루카도가 맞습니다. 루카도라고 발음합니다.”
값진 소득도 있었다. 이 일로 나는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규모는 내 경우와 비교할 수 없지만 내가 그 여자 앞에서 당한 상황이 곧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상황이다.
그분은 어떻게 공의와 자비를 둘 다 지키실 수 있을까? 어떻게 진리와 긍휼을 함께 베푸실 수 있을까? 죄를 용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을까?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실수를 묵과하실 수 있을까? 자비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실수를 처벌하실 수 있을까?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는 어떻게 대답해도 다 석연찮다. 그러나 그분의 관점으로 보면 세 번째 해답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