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우은진 기자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리운 계절이다. 굵직굵직한 브랜드 카페들이 국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크리스찬 브랜드 커피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름도 원색적으로 커피복음이다. 복음을 소리나는 대로 발음한 “보굼”을 영어철자 “vogum”으로 표기해 사용하고 있다. 이 보굼(vogum) 커피의 주인장은 커피복음아카데미의 문을 열어 바리스타를 양성하고 있는 박상준 대표다.
그가 목동 한가운데 커피복음아카데미를 오픈한 것은 2010년, 그 후 보굼 커피를 배우겠다고 물밀 듯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쉴 틈이 없다. 1년 동안 보굼 카페 지점만 목동, 남부법원 등 4개 지점이 생겼고, 커피교실도 10개, 카페 교회도 2개나 오픈 되었다. 매달 열리는 커피복음아카데미 과정은 항상 수강생들로 북적인다.
이 모든 일이 불과 1년 사이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다. 박상준 대표는 기적이 일상이 돼버린 이야기가 자신에게는 하도 많아, 이젠 웬만한 기적에도 놀라지 않게 됐다고 미소 짓는다. 그런데 커피를 볶고, 카페의 문을 열기까지 그에게는 특별한 여정이 있었다. 움츠러들고 실의에 빠져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도전장을 내밀어 볼 만한 재미난 여행담을 들려 준 그로부터 보굼 카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셋값 3,700만원 들고 세계여행을 시작
2007년 그는 32세였고, 아들 둘을 둔 가장이었다. 그런데 전셋값 3,700만원을 털어 세계여행을 떠났다. 첫째가 7살, 둘째가 7개월이었다. 아내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설득해 3년 기간을 잡고 아무 계획 없이 여행에 돌입했다. 그가 이같이 무대포 정신으로 세계여행에 나서게 된 이유는 하나이다.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1990년 초 그는 스무 살의 가난한 신학생이었다. 그때 학교 캠퍼스에 붙어 있던 외국 배낭여행 포스터를 보고, 그는 가슴에 불이 붙은 것처럼 흥분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동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배낭여행을 갈 만한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냉혹한 현실이 그의 꿈을 좌절시켰다.
그런데 신대원 3학년 때 성지순례를 가면서 세계여행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여행을 떠나리라’고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했다. 그는 10여 년 전에 배낭여행을 떠나지 못한 게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막상 성지순례를 가보니 책이나 영상을 통해 보던 것과 실제의 차이가 컸다.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어졌고, 복음을 온전하게 전하기 위해서라도 선교지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계여행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아내에게 설명했다. 당시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첫째를 제왕절개 했던 아내에게 그는 자연분만을 강력하게 권했다. 자연분만을 해야 모유수유도 잘 나와 여행하는 데 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생명탄생의 체험을 자연분만을 통해 경험하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는 브이백을 통해 자연분만을 하고, 7개월 후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전셋값 3,700만 원을 빼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돈이 떨어질 때까지 여행한다는 생각 하나만 품고 비행기에 올랐다. 단지 계획이 있다면 3년을 여행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이었다.
40개국 여행 후, 딱 3,700만원 남아
사실 그는 처음에 소년부 전도사로서 시무하던 영락교회 단기선교사로 파송 받아 길을 나섰다. 처음 간 나라는 인도였다. 그 뒤 네팔,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심양과 동북지방 선교지를 돌았다. 그리고 잠시 귀국해 목사안수를 받고 중국 곤명에서 안식년을 가진 선교사 대신 10개월간 파송선교사로 사역한 뒤, 총 2년 동안의 단기 선교사 사역을 완전히 마쳤다.
이때부터 ‘가보고 싶은 선교지에 가자’라는 생각으로 가족과 일정 없이 티벳을 향해 떠났다. 이후 태국을 거쳐 두바이, 터키 이스탄불, 이집트, 에디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을 거친 후 브라질에 2주 동안 기거하며 남미여행을 시작했다. 또한 파과라이,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을 여행했다. 이때 작은 아들과 아내, 그와 큰 아들이 차례로 아팠다.
여행을 끝마칠 때가 됐다고 생각한 그는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캠핑카를 빌려 여행하며 3년간의 긴 여정을 마쳤다. 이렇게 그는 어린 두 아들과 아내와 함께 3년간 40개국을 단돈 3,700만원으로 모두 여행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더 큰 기적은 귀국할 때 그의 주머니에 딱 3,700만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드러내놓고 선교를 떠난다고 공식적으로 후원을 부탁한 것도 아닌데, 십시일반으로 알게 모르게 그의 선교여행을 후원하는 손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3년간 40개국을 돌며 선교지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현지인, 여행객, 선교사들의 소개에 의해 다양한 단체와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 외 경비는 가지고 갔던 돈으로 충당하고, 오히려 귀국 시에는 3,700만원이 도로 남았던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
떠나기 전에 모든 짐을 처분하고 기거할 집도 없었던 그는 귀국 후 갈 곳이 없어 한동안 찜질방에서 살았다. ‘그는 이 여행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40개국을 여행하게 하심으로 보여 주고 경험하게 하시며, 훈련시키신 의미를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데 기존 교회에서는 그 사랑을 찾기 힘들었고, 기존 전통 교회의 모든 행사와 격식 등이 신앙의 본질보다 형식에 치우치는 듯 했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는 남을 위해 사는 삶을 사는 것이었고, 그는 그 방법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개척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한 달간 여러 교회에 이력서를 냈다. 그는 일부러 뭔가 하나씩 서류를 빼고 이력서를 냈다. 결국 아내가 이를 눈치챘고, 그는 아이들이 어리고 자신이 젊을 때 교회를 개척했으면 하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2008년 4월 6일 목동아파트 8단지 상가 지하에 교회를 개척하고, 이름을 소풍교회라고 지었다. 여행갔던 프랑스의 한 숙소에 영어로 써 있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라는 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강대상에 올라가 첫 예배를 드렸는데, 두려움이 밀려와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고 한다. 그는 너무 무모하게 철없이 교회를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그는 하나님께 3년만 시간을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여행 중 만난 커피전문가에게 커피를 배우다
사실 그는 목동이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왔다. 그가 개척한 교회는 3개 교단의 교회가 모두 실패하고 나간 자리였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이미지와 평판도 안 좋았다. 그는 남은 3,700만원을 교회 개척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어떻게 복음을 담아낼 수 있을지 계속 기도했다. 그리고 지하 교회에서 혼자 망치를 들고 수리하기 시작했다.
공사를 할 때마다 공사비가 필요하면 우연찮게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에 의해 공사비가 해결되었다. 한번은 페인트 비용 130만원이 필요할 때였는데, 아는 권사님이 방문해서 헌금하고 가셨다. 그에게는 이런 기적들이 반복되었고, 기적이 일상이 돼버릴 만큼 축복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가장 먼저 교회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으면 했다. 맞벌이 부부로 인해 엄마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아이들을 돌봐 주고 먹여 주었다. 그리고 교회에 탁구대를 들여놓고, 탁구교실을 열었다. 그리고 좀 더 지역주민과 소통할 방법으로 커피교실을 여는 것을 제안 받았다. 솔직히 그는 믹스 커피 애호가였다. 그런데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여행하면서 만난 비니엄 홍이라는 커피전문가가 떠올랐다. 비니엄 홍은 전 세계를 2년간 돌면서 커피만 연구한 사람으로, 그에게 여러 번 커피를 배울 것을 요청 받았다.
그는 커피를 배운 뒤 2010년 목동의 교회 상가에서 커피 시음회를 열고, 커피교실을 열었다. 그런데 커피를 배우겠다고 목동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주부, 직장인, 작가, 대학생 40명을 대상으로 커피복음아카데미의 문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5개 반을 강의할 정도로 수강생이 증가했고, 급기야 커피를 배우던 한 수강생이 자신이 부동산을 하던 자리에 무상으로 카페를 열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보증금은커녕 돈 한 푼 없이 지금의 보굼 카페 1호점이 오픈 되었다. 그는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보굼 카페’라는 영어발음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오히려 거부감 없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지역주민들이 오가며 사랑방처럼 방문하게 되었다.
커피복음아카데미에 밀려드는 수강생들
그는 보굼 커피의 경우 커피 자체가 전혀 새로운 방식이라고 소개한다. 기존 커피는 커피의 고유한 맛보다 자극이 강했다면, 보굼 커피는 유기농 커피만을 사용해 커피의 진짜 맛과 향을 전해 준다는 것이다. 커피 안에는 좋은 성분과 안 좋은 성분이 7:3의 비율로 혼합되어 있는데, 보굼 커피는 쓴맛과 탄 맛이 없고 몸에 좋은 맛만 낸다고 한다.
실제로 보굼 커피는 녹차 잔 같은 컵에 연한 커피 색깔과 단맛이 느껴져 한번 맛들이면 보굼 커피 마니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굼 커피를 배우려는 수강생들이 각처에서 입소문 하나만으로 몰려왔고, 한창일때는 일주일에 17개 반을 수업할 정도다.
그는 커피교실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제자훈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1번 2시간 동안 수강생들과 커피라는 주제로 강의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또 하나의 목회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커피를 배우러 왔다가 그와 대화를 하면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치유된 사람들도 있고, 수업이 끝나면 후속 모임을 가지며 각자가 지닌 삶의 문제에 대해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강의 중에 일체 복음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늘 복음적으로 나타났다. 그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상처가 치유되자 짧은 순간이지만 공동체성과 유대감이 높아졌다. 그래서 그의 커피복음아카데미에는 수료한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처음에는 단순히 커피를 배우러 왔지만, 관계가 형성되고, 이야기를 나누며 치유가 되니 거부감 없이 복음이 전달되는 것이다.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삶의 희망 전하고파
그는 현재 소풍교회를 두 명의 교역자와 함께 협동목회 형식으로 꾸려가는 한편, 커피복음아카데미를 통해 또 하나의 일터 교회를 일구어가고 있다. 그가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은 현재 교회가 전통적 방식의 개척 교회 형태로는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주변의 선후배 목회자들의 실태를 파악해 보면 실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역지가 없어 우울증에 걸린 목회자, 대리 운전하는 목회자, 아예 일반 직장으로 직업을 바꾼 목회자, 자살한 목회자 등 개척 교회 목회자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대안 중 하나로 그는 카페 교회를 제시한다. 그냥 교회를 개척하면 사람들을 모으기 힘들지만 카페 교회로 문을 열면 평일에는 카페로 활용하고, 저녁이나 주일에는 소그룹 모임이나 기도모임, 예배 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또 사람 만나기 힘든 상황에서 카페는 이 시대의 소통의 도구가 된다는 사역적인 발견 때문이다. 실제로 보굼 카페로 교회의 문을 연 카페 교회의 경우 모두 잘되고 있다.
그는 보굼 커피 한 잔에 250원을 적립해서 굶주린 북한 아이들의 급식비를 마련해 통일을 준비하고 있고, 카페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회자들을 지원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평신도 사역자들을 키워 함께 아카데미, 인테리어, 프랜차이즈 등 각 분야를 나눠 동역함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시대의 개척 교회 목회자들과 어려운 평신도들을 돕고, 시대상황에 맞는 복음 전도를 통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 싶은 것이다. 또 카페 교회도 단순히 커피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바인더, 독서, 성경, 기도모임 등 다양한 소그룹 주제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생동감 있게 살도록 지원하고 싶다.
그는 이 시대가 “비즈니스를 통한 사역, 목회자도 달란트에 맞게 텐트 메이커로서 일터 교회 사역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복음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라고 소개한다. 그동안 커피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고 말하는 그는 “바울이 전도하러 다녔던 40개국을 방문하면서 바울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닮고 싶어졌다”며, “바리스타 양성뿐만 아니라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새롭고 신나는 삶을 위해 창업을 지원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그는 세계여행을 하며 바울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는 말씀을 자신의 인생에 지침으로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