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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 3:12~14)
에이미 카마이클(1867~1951)
아일랜드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에이미 카마이클은 1885년의 어느 주일,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누더기 차림의 한 노파를 돕게 되었다. 하지만 선한 행동이었음에도 곧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귀에 고린도전서 3장 12~14절 말씀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이 말씀을 놓고 진지하게 기도를 했고, 앞으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칭찬하실 만한 일만 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이후 에이미는 그녀가 살던 지역에서 천하게 여겨지던 여공(女工) ‘숄리’들의 성경공부 모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조차 꺼리던 이들이었지만 에이미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들의 성경공부 모임을 위한 건물을 짓기까지 하며 열정적으로 사역에 매진했다. 그녀는 이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마가복음 16장 15절 말씀을 품고 선교를 향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일본과 콜롬보를 거쳐 드디어 1895년, 제나나선교회를 통해 인도의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고, 오랜 시간 굳어져 온 힌두교인의 신분제도 ‘카스트’가 엄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비인간적인 차별이 산재했으며, 어린이들을 힌두교 신전에 바치기도 했고, 기독교로 개종 시에는 이교도로 취급당했다.
그러나 에이미는 신분과 상관없이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했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었으며, 여성들과 함께 ‘별무리전도대’를 만들어 전도에 힘썼다. 그러다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한 여자아이를 구출했던 일을 계기로 어린이 사역에 적극 나서게 된다. 이 사역은 곧 ‘도나버(Dohnavur)’라는 공동체로 성장하였고, 이곳에는 개종한 아이들이나 신전에 바쳐졌다가 구출된 아이들 등 수백 명이 정착해 살게 되었다. 의료 사역으로까지 확장된 이 사역은 현재까지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오직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으며, 인도 어린이들에게 새 소망을 심어주었던 에이미 카마이클. 1951년 하나님의 품에 안긴 그녀의 묘에는 인도어로 어머니를 뜻하는 ‘암마’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유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