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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닫혀 있던 미지의 땅을 연 복음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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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


1800년대 당시 미지의 대륙이었던 아프리카를 탐험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던 데이비드 리빙스턴. 그런 그의 사역을 돕기 위해 영국의 한 선교단체가 조력자를 보내겠다고 편지를 부쳤다. 다만 그가 있는 곳을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 편지에 대한 리빙스턴의 답변은 그가 어떤 자세로 아프리카 사역을 해 나갔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그 마음은 감사하지만 편한 길만을 따라오려는 사람들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길이 없을지라도 기꺼이 찾아오고자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1813년 영국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10살 때부터 방직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일하는 도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일을 마친 저녁에는 기관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등 학업에 열정을 보였다. 특히 그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의료선교사라는 비전을 품게 된다.
리빙스턴은 1836년부터 2년 동안 앤더슨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며 꾸준히 중국 의료선교사로 파송 받을 준비를 해 나갔다. 하지만 1839년 발발한 아편전쟁으로 인해 중국을 향한 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때 고민을 거듭하던 그가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정하게 된 계기는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던 모펫 선교사와의 만남이었다. 모펫의 아프리카 사역 보고를 들은 리빙스턴은 미개척지역인 아프리카 중부 내륙지역을 가슴에 품게 되었고, 마침내 1840년 아프리카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이후 그는 아프리카 깊은 내륙지역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갔다. 리빙스턴은 의료선교사로서 아프리카인들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지인 리더십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사고파는 노예무역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고, 특히 이 문제의 해결과 복음전파의 통로 개척을 위한 아프리카 탐험을 멈추지 않았다.
1873년 하나님 품에 안기기 전까지 열정적으로 이어졌던 그의 사역은 아프리카를 향한 선교사역이 활발해지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의 탐험으로 발견된 아프리카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닫혀 있던 미지의 땅에 복음을 전하는 큰 씨앗이 되었다.

<유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