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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종교개혁, 성경에서 시작되어 성경으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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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마틴 루터(1483~1546)

“제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증거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을 철회할 수 없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여기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
교황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중세의 유럽, 돈을 받고 죄를 면해 주는 면죄부 판매에 대항해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써 붙인 마틴 루터는 국회 청문회에서 마지막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단자로 판결 받고 가톨릭교회에서 추방당했다.
마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고해성사를 오용하고 면죄부라는 값싼 은혜를 팔았던 교회의 잘못된 제도를 지적하면서 “십자가의 값비싼 은혜를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이는 당시 복음보다 강력한 교황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이후 쫓기는 몸이 된 루터는 변장한 채 피난생활을 했는데, 저술 활동을 계속함과 동시에 성경 번역에 착수해 11주 만에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사제직을 파면당해 설교는 할 수 없었지만, 평신도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신약성경의 보급과 그의 사상이 담긴 저술 활동으로 오히려 종교개혁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루터가 살았던 16세기에는 수도원이나 신학대학에서조차 성경을 보는 경우가 희박했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스콜라 신학이 대세를 이뤄 성경은 단지 하나의 역사 문서로 읽히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수도원 사제로서 자신의 죄의 무거움과 그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로워하고 있던 그는 어거스틴을 비롯한 교부들의 글과 성경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시간 오해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열렸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를 발견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최종적 권위가 교회의 권력이 아닌 성경에 있다고 외쳤다.
1세대 종교개혁가로서 교회뿐 아니라 개인의 신앙과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2세대 종교개혁가인 장 칼뱅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마틴 루터. 성경에서 시작되어 성경으로 돌아간 그의 종교개혁은 긍정적 평가와 함께 비판도 받았지만, 중세를 넘어선 영원한 종교개혁으로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박시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