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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1959년 국내 최초로 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했던 당대 최고의 외과 전문의 장기려. 한국의 슈바이처, 바보 의사, 작은 예수 등 그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주님, 저를 의사로 만들어 주신다면, 가난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평양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온 장기려는 천막병원을 세워 무료 진료를 하고, 의료 기관이 없는 곳에 정기적으로 찾아가 한 번도 의사를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다. 가난한 그 시절, 미래가 보장되는 자리들을 거절하고 천막병원의 원장으로 살아가던 그는 자신의 월급마저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내놓기 일쑤였다. 이러한 그의 헌신으로 마침내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인 부산 ‘복음병원’이 세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한 이웃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장기려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는 당시 의료보험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독려하여 부산에서 청십자 조합의 기능을 활성화시켰고, 1989년 전국에 정부 의료보험이 실시되기까지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
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장기려의 성품, 봉사와 관련된 일화가 많다. 동료들이 그를 억울하게 모함할 때에도 병원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환자들을 돌본 것, 돈 없는 환자에게 밤에 몰래 도망가라고 하며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은 것, 집 한 채도 없이 복음병원 옥탑방에서 살았던 것, 피난 이후 이산가족이 된 아내와 늘 기도로 만난다며 재혼하지 않은 것 등.
그는 늘 성경 말씀을 묵상했고, 특히 요한일서를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진리를 삶에서 입증하려 했다. 묘비에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고만 써달라고 유언했다는 그는 의사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겼다.
<박시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