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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9월

요즘 시대 부모들의 자녀 교육

과월호 보기 오인숙(교육상담 전문가)

부모로서의 정체감이 혼미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부모란 무엇인가?’, ‘부모로서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없이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고, 이기적인 자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과연 내 자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신 없이 시대의 풍조를 따라 우왕좌왕하며 부모로서의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다.

 

사자로부터 배우는 자녀교육
얼마 전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바른 자녀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내 자식 기 살리기’, ‘내 자식 최고 만들기’가 만연한 시대 속에 부각된 하나의 그릇된 예라 볼 수 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 사랑을 물질과 힘의 제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녀를 올바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때로 부정이나 모정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과보호로 자녀의 의존심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이 시대 부모들에게 사자의 자녀 교육은 들어볼 만한 이야기다.
  사자는 새끼에게 먹이 잡는 훈련을 시킬 때, 새끼가 자기 체구보다 작은 짐승을 추적하면 어미가 뒤따라가 뒷발질로 낚아채 버린다. 치사하게 굴지 말라는 것이다. 새끼사자가 하이에나 떼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아도 어미사자는 지켜만 본다. 그러다가 새끼가 상처투성이 되어 돌아오면, 바보처럼 당하기만 하느냐고 앞다리로 새끼를 세차게 때리고 생후 1년 만에 사냥을 가르쳐 독립시킨다. 그 후에 새끼가 먹이를 못 잡아 굶주릴 때에도 어미는 냉정하게 먹이를 나눠 주지 않는다.
  부모는 누구나 자기 자식이 으뜸이 되기 원한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기 원하고, 부와 명예를 갖기 원한다. 그러면서도 자녀를 나약하게 키우는 모순을 갖고 있다. 큰 인물이 되려면 어려서부터 그에 합당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훈련이 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는 인물로 자랄 수밖에 없다. 남에게 영향력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녀를 키우려면 부모는 때로 본능적인 사랑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의 가치관은 100% 학습 된다
부모의 태도와 가치관은 자녀에게 100% 학습된다. 부모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자녀의 삶의 방향과 목표가 달라진다. 부모가 ‘물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자녀에게도 그런 가치관을 전수한다면 큰 문제다.
  우리 선조들은 부모의 재물이 자녀에게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현명하게 대처했다. 조선 숙종 때 어린 형제를 키우는 가난한 선비 집안의 홀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텃밭에서 밭을 일구다금은보화가 가득든 독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급히 독을 다시 묻어 버리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이후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하며 두 아들을 가르쳤고, 그들은 성실하게 자라 과거에도 급제해 벼슬이 날로 높아졌다.
  그 무렵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 중국에서 조공을 바치라는데, 그에 응할 보물이 나라에 없어 큰 걱정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전에 살던 집의 뒤뜰을 파 보라고 일렀다. 거기서 나온 보물로 나라의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돌아온 아들들이 어머니께 여쭈었다. “집에 그렇게 많은 보물이 묻혀 있는 것을 아시면서 왜 그동안 고생하셨습니까?”
  그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힘들이지 않고 재물을 얻으면 욕심이 생기고 재물의 귀함을 모를 뿐만 아니라, 너희가 재물을 의지해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물보다 더 귀한 가치를 너희에게 남겨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내 자녀는 편안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녀를 안일하게 키우며 병역 비리나 부당 편입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부모는 ‘그것이 바른 자녀 사랑인가?’ 의문을 가져야 한다. 부모는 바른 가치관을 갖고 자녀를 근실히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자녀를 훈계하고 훈련하는 데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 부모들은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 중 ‘내 자녀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아는 자’로 키워 달라는 기도에 자신의 기도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라
사무엘상에 두 가정의 자녀 교육 이야기가 동시에 나온다. 첫 번째는 아이를 잉태하기 전부터 성전에서 기도하던 한나 가정의 이야기다. 한나는 기도의 결실인 사무엘을 낳자 젖떼기를 기다렸다가 사무엘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데리고 갔다. 어린 것을 떼어 놓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마는 한나는 그렇게 했다.
  두 번째는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 가정의 이야기다. 아버지 엘리가 제사장이었음에도 아들들은 불량자였고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삼상 2:12).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삼상 2:24)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엘리가 자식들을 그렇게 자라도록 내버려둔 ‘무관심한 방임형 부모’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도 엘리와 같이 자녀가 저주를 자청하도록 방임하고 자녀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부모가 있다. 그들은 가치관, 인생관, 교육관을 재정립하고 ‘부모로서 나는 누구인가?’,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부모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