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장다나(영화 평론가)
어느 평범한 미국인 여성(조안 폰테인)은 휴가차 방문한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맥심(로렌스 올리비에)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맥심과 함께 그의 저택에서 지내게 됐는데, 그곳은 첫날부터 뭔가 음습하고 기괴하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는 집사 댄버스 부인(주디스 앤더슨)을 비롯해 저택의 모든 것들이 맥심의 죽은 전처 레베카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 근처에서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 저택의 비밀이 하나둘 밝혀지게 된다.
서스펜스 스릴러 분야의 대작으로 손꼽히는 <레베카>는 인물간의 미묘한 심리 관계,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긴장 구조, 거듭된 반전 등 고전 영화라고 하기에 무색할 만큼 완성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특유의 메인 플롯은 지금도 다양한 현대적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레베카>는 관객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심리적 긴장을 극의 전개 동력으로 삼는다. 바로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한 공포’다. 실상 레베카는 극 중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각 인물들이 레베카의 본 모습과 숨겨진 삶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동안, 관객과 주인공은 그 간극에서 수많은 추측과 오인을 반복하며 레베카라는 인물을 설정하게 된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집사의 모호한 표정, 레베카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맥심, 주요 순간마다 주인공의 눈에 띄는 서쪽 방 창문과 흔들리는 커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비밀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은 레베카라는 인물을 더욱 공포스러운 존재로 환원시킨다. 히치콕은 ‘보이지 않음’을 ‘보여 줌’이라는 역설적 방식을 이용해 레베카를 미스터리하고 공포스러운 인물로 탄생시켰다. 영화의 미장센이 가장 크게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레베카>는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조안 폰테인을 연기파 배우로 알리게 했다. 이후 폰테인은 멜로에서부터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력을 보여 줬는데, 그녀가 <레베카>에서 남편 맥심에게 한 사랑 고백은 할리우드 영화가 남긴 명대사 100개 중에 하나로 꼽힌다.
“추억이 사라지거나 변하지 않게 병에 담아 두고 언제든 뚜껑을 열어 그 추억을 다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