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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

지친 영혼에게 갓 지은 밥 한 끼를 <리틀 포레스트>(2018)

과월호 보기 박일아(영화 평론가)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을 다룬 영화이다. 감독은 요리 전문가의 부담스러운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범주에서 소박한 음식 한 끼가 힘들고 지친 사람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고시에 낙방한 혜원(김태리)이 고향 집에 내려왔다. 갑자기 왜 왔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배가 고파서 밥 먹으러 왔다”라는 대답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녀는 고향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집 앞마당, 뒷산, 고모네 논, 친구네 과수원 등에서 계절이 제공한 신선한 먹거리로 한 끼 한 끼 정성스레 밥을 지어 먹는다. 팥을 찌고 빻은 치자 가루와 쌀가루를 섞어 떡을 만들기도 하고, 누룩으로 쌀을 숙성시켜 시큼털털한 막걸리도 만들며, 라일락과 쑥갓을 기름에 튀겨 내고, 밤을 깎아 설탕에 조려 밤 조림을 만들면서 진정한 슬로우 푸드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리틀 포레스트>가 마음에 위로를 주는 지점은 식재료가 나고 성장하는 자연 풍경을 그대로 담은 지점이다. 카메라는 멀리서 보면 단조롭지만 가까이 보면 변화무쌍한 자연의 표정과 소리를 싱그럽게 담아낸다. 또한 편의점 도시락과 길거리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 알 수 없는 도시에서의 노동과 달리, 욕심 없이 직접 먹을 야채와 과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노동은 입에 들어가는 순간 정서적인 만족과 위로를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법으로 입에 들어갈 음식을 위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시간을 투자하고 몸을 움직이길 제안한다. 이 단순한 방식은 비단 육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영의 양식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내고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움직임을 통해 우리의 영혼도 소생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혜원의 엄마는 딸에게 남긴 편지에서, 힘들 때 고향의 햇빛, 바람, 토양을 기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나’라는 존재가 튼튼하게 성장하기까지 토양이 됐던 공간, 사람 혹은 추억은 지친 어느 날, 내가 누구인지를 일깨워 주고 나를 다시 일으키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오늘 차리는 밥 한 끼가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