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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당신이 있어 내가 살 수 있다 <#살아있다>(2020)

과월호 보기 박일아(영화 평론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느지막이 일어난 준우(유아인)는 카메라를 켜고 듀얼 모니터를 보며 게임을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헤드셋 안에서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켜니 긴급 재난 뉴스가 한창이다. 베란다 밖에는 좀비 떼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일형 감독은 인터뷰에서 <#살아있다>와 다른 좀비 영화의 차이는 ‘감정의 공유’에 있다고 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언제 좀비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쫄깃한 심장의 조임이나 물고 뜯는 좀비를 시원하게 처단하는 카타르시스 대신, 좀비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기 위해 숨죽여 구조대를 기다리는 현실적인 인물을 보며 다소 밋밋한 시간을 경험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북미 1위를 차지했다. 그 이유는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하며 무선 인터넷으로 생존을 알리는 것이 일상이 된 코로나19 시대의 관객들이, 고립감을 주요 정서로 하는 이 영화에 감정적인 공유를 했기 때문이다.
준우는 드론에 핸드폰을 붙여 데이터 신호를 잡거나 바깥 상황을 알아보는 등 온갖 와이어리스(Wireless)와 블루투스(Bluetooth) 장비를 사용하는 현 디지털 세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한편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유빈(박신혜)은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부서진 현관문으로 들어올 좀비를 대비해 장치를 만들거나 손도끼 등의 산악 장비를 이용한다.
극한 상황에서 혼자만 살아 있다는 사실이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고 희망 없게 만드는지를 경험한 준우와 유빈은, 자신 외에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갖는다. 이들은 상대에게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허공을 가로질러 드론(무선 기계)을 통해 루프(선)를 연결한다. 어떤 방식이든 소통이 사람을 살린다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전달되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에서 생존을 위해 두 주인공이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혼자 살아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사그라들던 삶의 의미가, 함께였을 때는 솟구치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속성은 유선과 무선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함께 살아 있기에 힘써야 할 시기다. 서로의 살아 있음을 알리는 <#살아있다>라는 영화의 제목은 신의 한 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