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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어부 창대를 벗과 스승으로 만난다<자산어보>(2021)

과월호 보기 박일아(영화 평론가)

순종(재위: 1907~1710년) 1년, 유교의 근본을 흔드는 사학(천주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정약종은 사형을 당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멀리 유배를 떠난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목민심서》를 쓰는 동안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썼는데, 여기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한 인물이 있다. 진사(鎭使)의 서자이자 어부였던 장덕순 곧 창대라 불리던 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 창대라는 인물에 상상력을 더해 영화 <자산어보>를 만들었다.
성리학에 심취해 있던 창대는 사학에 빠졌다는 정약전을 멀리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출세도 하고 싶었던 창대가 자신을 증명할 길은, 성리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신봉하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고기에 관해 묻는 정약전만큼이나 글공부에 목말랐던 창대는 못 이기는 척 지식 교류의 계약 관계로 정약전을 받아들인다.
당대 누구도 해양 생물에 대한 앎을 지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 글 지식과 물고기 지식의 교환을 맺은 정약전의 사고방식은 놀랍다. 성리학과 실학, 사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상에 정통했던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사물의 이치를 익힌다. 그리고 각종 해산물을 잡는 방법과 먹는 방법까지 책에 기술하며 백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서문에 창대를 명민한 사람으로 소개하며, 책의 곳곳에 “창대가 말하였다”라고 기록했다. 이를 통해 그가 창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약전이 성리학을 저버렸는지, 진심으로 천주교를 배교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창대에게 “양반도, 상놈도, 임금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실천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정약전은 창대의 출신에 연연하지 않고 그를 진정한 스승이자 벗으로 여겼다. 이후 창대는 나주에서 탐관오리의 극악무도함을 목도하며, 아는 것과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하는 것’까지 나아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한다.
흑백으로 펼쳐지는 스크린 위에 진정 어린 배우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회당 앞의 바리새인이 아니라, 어촌에서 군중들과 어울렸던 예수님이 떠오른다. 계급과 사상을 뛰어넘은 실천가였던 정약전은, 율법을 넘어 사랑을 실천했던 그분과 많이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