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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그래도 삶은 희망을 품는다 <자전거 도둑>(1948)

과월호 보기 장다나(영화 평론가)

빛바랜 흑백 필름 속, 한 남자가 하염없이 자전거를 찾아 헤맨다. 그를 따라나선 어린 아들은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부지런히 아버지의 발걸음을 좇는다.
이들이 그토록 찾고자 하는 것은 낡고 덜그럭대는 중고 자전거지만, 이 자전거를 찾느냐 못 찾느냐의 문제는 곧장 이들 가족의 생사와 연결된다. 그들의 공허한 눈빛은 어느덧 간절한 기도가 되고, 이들의 땀과 뜀박질, 건조한 회색 도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비극의 시기를 마주하게 한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어렵사리 포스터 붙이는 일을 맡게 된 리치(리아넬라 카렐).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자전거를 도둑맞아 아들 브루노와 함께 자전거를 찾아 헤맨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영화 역시 동시대의 영향력 안에 놓여 있다. 특히 산업 사회, 기술 문명이라는 근대를 배경으로 시작된 영화는 격변하는 20세기를 가감 없이 흡수한다. 그런 점에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암흑기를 넘기던 이탈리아 소시민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긴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느슨한 이야기 구조, 명확하지 않은 사건과 결말, 비전문 배우의 대거 등장을 특징으로, 전후의 피폐함을 픽션과 리얼리즘의 경계에서 표현한 영화 예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자전거를 찾는 아들과 아버지의 하루를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따라간다. 그러나 그들의 슬픈 여정을 담는 스크린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으로 수많은 감상을 떠오르게 한다. 회색빛의 하늘과 깊게 주름이 파인 리치의 얼굴,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브루노의 간절함, 아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쓸쓸한 리치의 표정은 전후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 계층의 공허함과 무기력함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끼게 한다.
그래도 이 영화를 비극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무너진 아버지 옆에 서 있는 아들이 의미하는 어떤 미래적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언제나 현실을 비추고, 현실은 영화를 통해 꿈을 꾸기 마련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