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오정현 목사
오늘날 현대인들은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온갖 종류의 소리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때론 소리가 소음으로 바뀌어 사람들을 공격하고, 사람들은 ‘소음규제법’ 같은 것을 만들어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은 그다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뉴욕 당국이 시민들의 ‘품위있는 삶’을 위해 개설한 전화에 지난 한 해 동안 소음문제로 접수된 건수만 27만 건이나 된다. 이 사실은 소음에서 자유할 수 없는 현대인의 피곤한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소리가 소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들을 살리는 소리도 있다. 이러한 소리를 성경에서는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진정한 복음이 들려지면 보지 못하는 자가 보게 되고 걷지 못하는 자가 걷게 되며 중병에 걸린 환자가 나음을 입게 되고, 귀먹은 자가 들을 수 있으며 심지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눅 7:22). 그래서 신앙의 선조들은 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기쁘게 던졌던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와 교인들의 모든 문제는 복음을 가장한 소리들이 복음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의 복음 대신에 물질적인 복을 보장하는 소리가, 심령의 가난함을 외치는 복음 대신에 육신의 건강과 이생의 자랑을 주장하는 소리가, 죄를 일깨우는 복음 대신에 영혼의 평안을 다독거리는 소리가 교회에서 더 크게 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복음 대신에 변질된 복음이 교회에서 세력(勢力)을 얻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세상의 수치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깊은 상처로 신음하고 고통하던 한국 교회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소리가 울리고 있다. 지난 7월 8일 주일 저녁 상암에서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 우리 자신의 죄, 교회가 분열하고 일치와 연합으로 하나 되지 못한 한국 교회의 죄 그리고 1936년 신사참배를 했던 우리 민족의 죄를 회개하였다. 그리고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라는 설교를 통해서 한국 교회에 만연한 변질된 복음을 회개하고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눈물로 부르짖駭?설교자의 외침에 십여만 명의 회중들은 아멘으로 대답하였다.
이제 상암에서 시작된 희망의 소리는 평양 대부흥 100주년인 2007년을 넘어 한국 교회와 이 민족 앞에 퍼지고 있다. 참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고 이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소리가 겹겹이 쌓인 교회의 이기주의와 맘몬주의를 뚫고 세상을 향해 회개의 울음 속에서 울려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암에서 들리는 희망의 소리가 세속의 허탄한 온갖 소리에 찌든 이 민족의 심장을 쳐서 깨우는 굉음이 되어 삼천리 강산을 새롭게 하는 진정한 복음으로 울려 퍼지는 그날을 꿈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