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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우리는 일이 잘 풀릴 때는 즐겁고 활기에 넘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실패를 하게 되면 우울해지고 좌절하며 자기만의 방어기제 속으로 숨어버린다. 이러한 경험들은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마주하는 인생의 파도와 같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 혼자 갈멜 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맞서 싸워 이기는 신나는 믿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야도 이세벨 왕후가 자기를 찾아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만 마음이 약해져 광야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기다리는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 로뎀나무는 큰 나무가 아니고 오른쪽 사진에서 보듯이 자그만 키의 덤불에 가까운 나무이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당시의 풍습에도 불구하고 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마치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갈 때 돌을 베게 삼아 누워 자듯이 지극히 외롭고 초라하고 처절한 모습이다.
17세기 스페인의 화가인 후안 에스칼란테(Juan Escalante, 1633~1670)는 이러한 엘리야에게 찾아온 천사를 그렸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주로 활동하였는데 장식적인 바로크 스타일의 화풍을 견지하였으며, 이탈리아의 틴토레토, 티치아노 등에게 배우고자 하였다. 기독교 주제의 그림을 많이 그린 그는 왼쪽 그림에서 보듯이 황량한 광야나 키 작은 로뎀나무 대신 큰 나무 아래에 누워 자고 있는 엘리야와, 그를 찾아와 떡과 물 한 병을 주며 그를 어루만지고 있는 천사를 사실적으로 잘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작가는 배경보다는 엘리야와 천사 두 인물 묘사에 충실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이나 환경보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과의 만남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하다. 이러한 점은 배경보다 핵심인물을 부각시키는 서양미술의 일반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의 이효임은 위의 오른쪽 그림에서 보듯이 황량한 광야와 그 사이에 드문드문 퍼져 있는 로뎀나무들만을 그려, 그 어떠한 표현보다도 황량함 속에 던져진 인간의 실존을 절감케 한다.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를 그리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작가는 황량한 광야에 드문드문 펼쳐진 로뎀나무 군락들을 통해 우리 삶의 절박하고 외로운 슬픔들을 서정적이며 동양적인 감성으로 풀어내고 있다.
판화작업을 많이 해온 작가는 최근에 <광야> 시리즈를 통해 광야의 떨기나무나 로뎀나무를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단순화된 광야 표현은, 고달프고 힘든 현실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단조로운 일상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신앙 고백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절망과 좌절의 시간에 로뎀나무 아래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떡과 물로 다시 힘을 얻고,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것을 경험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과 같은 사회적 병리가 이러한 주님의 은혜로 회복되는 치유가 일어났으면 한다. 로뎀나무 아래에 쓰려져 있던 엘리야에게 찾아오신 주님께서 힘들고 지쳐 낙심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찾아오실 것을 믿으며 “거친 파도 날 향해올 때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라고 찬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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