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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3월

가시 면류관을 드리리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예수님의 이미지는, 초기에는 양을 치는 목자로 묘사되다가 이후에는 우주를 통치하는 통치자나 심판자의 모습으로, 또 르네상스 시기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후 15세기에 들어와서는 가시 면류관을 쓴 고통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것은 당시 타락하고 부패했던 가톨릭교회가 예수님의 희생정신으로 돌아가 다시 회복해보고자 하는 시각에서 기인한 것으로,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가 대표적인 이론가였다. 당시 북유럽에 퍼져나갔던 이 사상을 통해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여 신앙의 순수함을 다시금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때문에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님의 초상화는 15~16세기의 북유럽의 회화들에서 많이 보인다.
네덜란드 출신의 알브레히트 보츠(Albrecht Bouts, 1460~1549)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대변하고 있는 작가로, 가시관을 쓴 예수님의 초상을 많이 그렸다. 보츠의 부친과 형제들 모두 화가였으며 성화를 많이 제작하였다. 왼쪽 그림에서 보듯이 예수님의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가 많은 가시관이 씌어져 있고, 양손에는 못 자국이 선명하여 그림을 보는 자들마다 숙연하게 만든다. 예수님의 얼굴은 창백하고 슬픈 모습으로 묘사되어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예수님의 신음과 애통함이 느껴진다.
한편 한국의 현대 작가인 심정아의 <아름다운 손>은 가시 면류관을 양손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보았던 예수님의 고난과 아픔에 우리도 동참하며, 가시가 상징하는 우리의 죄와 허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헌신을 모두 주님께 드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죄는 곧 나의 죄이며 나아가 인류 전체의 죄로, 예수님의 못 자국과 가시관을 우리도 똑같이 체험하며 주님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심정아 작가는 천을 인두로 지져서 선을 만들고, 이 선을 이어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는데 주로 가시관, 양 손바닥의 못 자국, 그리고 발 위의 못 자국 등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통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힘든 병마의 고통을 직접 겪으며 깨달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그린 것으로, 일상의 삶에서 주님께 드리는 사랑과 감사의 고백일 것이다.
앞의 알브레히트 보츠의 작품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그리고 심정아의 작품은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성화된 삶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죄의 늪에 빠진 절망적인 인류를 긍휼하게 여기시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은 그 자체가 사랑의 신비이고 기적이다.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은혜와 사랑이 이 작품들을 통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 이토록 무한하신 주님의 사랑이 내 가슴에 더욱 파도처럼 밀려온다.

- jungheehan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