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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발리 섬에 오신 예수님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 홍익대 미술대학


예수님의 모습을 작가가 자기 나라의 자연환경이나 풍습에 맞춰 그리고자 하는 태도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더욱 활발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2차 대전 후에 각기 독립한 여러 나라에서 자국의 독자성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흐름과도 관련이 깊다. 이런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에서 태어나서 계속 그곳에서 살았던 케투트 라시아(Ketut Lasia, 1945~?)도 좋은 예이다.

힌두교도였으며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던 라시아는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결국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에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 준 스승 와이안 투런(Wayan Turun)의 크리스천 친구들을 통해 기독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후에 만난 네덜란드 선교사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깊이 깨달은 라시아는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늘 그리던 발리의 자연 풍경에 예수님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이런 연유로 라시아의 독특한 <발리 섬의 예수님> 연작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일생을 30장의 작품으로 만들어 발리 섬 덴파사르에 있는 발리중앙교회에 봉헌했다. 그는 예수님의 세례, 말씀 사역, 그리고 세족식을 베푸시는 모습 등을 발리의 풍경과 인물들과 함께 세필로 정성을 다해 표현했다. 골고다의 언덕 대신 열대 밀림의 숲 속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모습은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감동을 준다.

여기서는 세례와 최후의 만찬 장면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모두 발리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한 <예수님의 세례>는 야자수가 우거진 얕은 강가에서 주변의 참석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모두 위로부터 들리는 음성에 귀 기울이며 비둘기가 있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마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라는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예수님이 하신 이 땅에서의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놀라운 일이 끝없이 멀어지는 작은 강들과 열대 식물들 가운데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조용한 일상처럼 전개되고 있다.

다음 작품 <최후의 만찬>도 역시 발리 섬의 한 집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편하게 앉은 자세나 예수님의 모습에서 열대지역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 땅에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식사시간의 긴장과 절박함은 아마 예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몰랐을 텐데, 그들의 편안한 모습이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상을 무디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이 여겨진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예수님의 이미지는 바뀌어 갔지만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멀리 계신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시는 예수님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믿음의 고백을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타나 주신다. 지구상 어디에서든, 저 멀리 작은 발리 섬에서까지도 예수님은 일상 속에서 늘 우리를 만나 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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