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3년 06월

예루살렘 입성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고,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게 된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인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제자들을 마을로 내려 보내신다.
제자들이 구해 온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데, 이때 타신 나귀는 창세기의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창 49:11)라는 말씀과 같이 포도나무에 매여 있었다. 여기서 포도나무는 하늘나라를, 나귀는 겸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겸손하심이 부각되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마지막 중요한 시점인 예루살렘 입성은 이후 많은 화가들에 의해 자주 그려졌다. 르네상스 초기에 활동했던 지오토(1267~1337)를 비롯해 수많은 작가들이 그렸는데, 4복음서에 보이듯 무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면서 환영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지오토의 <예루살렘에의 입성>은 나무 위에 올라간 사람들과 호산나를 외치며 길에 겉옷을 까는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나귀가 다소 크게 그려져 있으며, 좁은 공간에 주님과 제자들이 압축되어 표현되어 있다. 지오토는 성경에 나오는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했으나, 공간감이나 원근 처리에서 또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인물들을 실제보다 크게 그리고 있는 점에서 고풍스런 표현을 보여 준다.

한편 19세기 말 벨기에 브뤼셀에서 주로 활동했던 제임스 앙소르(1860~1949)는 이 오래된 주제를 변형시켜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이는 예루살렘 대신에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인 브뤼셀에 ‘예수님이 오시면 어떠할까’ 하는 착상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사람들의 환호 대신 ‘사회주의 만세’라고 적혀 있는 플래카드가 군중들로 가득 찬 광장에 걸려 있다. 정치적 슬로건에 의해 많은 군중들이 몰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림 가운데에 자그마하게 그려져 있고,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림 속에서 가면을 쓰고 각자 자유롭게 웃고 떠들고 있는 많은 무리는 예수님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무감각함을 상징하고 있다. 작가는 이미 19세기 말에 현대인의 종교적 무관심을 심각하게 예견한 것이다.
앙소르는 당시 예술적으로 너무 앞서 나가 다른 작가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서의 예수님은 어쩌면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자신을 브뤼셀로 들어오시는 고독한 예수님과 동일하게 본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에 대한 현대인들의 거부와 무관심은 점점 보편화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대로 나귀를 타시고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절절한 사랑을 묵상하며 지금 나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 나는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환호하는 군중인가, 아니면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는 외로운 제자인가.

- jungheehan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