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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조선 땅의 예수 그리스도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예수님의 모습은 어떨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 같다. 당연히 유대인의 일반적인 모습일 텐데,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의 모습은 미국의 성화 작가인 워너 샐만(Warner Sallman, 1892~1968)의 수염이 긴 백인의 모습인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선교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나름대로 이해되고 있다. 20세기에는 각 지역마다 자신들의 처지와 환경에 맞게 예수님의 모습을 변형시켜 그리는 것이 성행했다. 아프리카에서는 흑인의 모습으로, 인도에서는 인도인의 모습으로,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인이나 일본인의 모습으로 바꿔 그려졌다.
한국의 경우에도 토착화된 예수님의 모습이 여러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는데, 대개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들도 모두 조선시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들과 구별하기 위해 예수님만 머리에 후광을 하고 있다.

장운상(1926~1982)의 작품 <한복 입은 예수>는 천국은 어린아이처럼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의 것이라 말씀하시며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고 축복하시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막 10:15~16). 작가는 예수님을 크게 그리고 주변에 아이들을 많이 배치했으며 모두 한국 복식을 갖추었다. 선묘를 중시하고 색채도 연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스승인 월전 장우성의 신문인화풍을 따른 것이다. 정갈하고 소박한 이러한 인물화풍은 이전의 강한 채색과 가는 필선에 의한 이당 김은호의 일본식 인물화풍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방식이다.
장운상은 오랜 기간 동덕여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늘 라파엘의 우아한 성모 마리아상과 같은 구원의 여성상을 그리고 싶어 했고, 그것을 한국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구현해 보고자 했다. 그는 신자로서 여러 성화들을 남겼는데 일반적으로는 한복 입은 고아한 조선 여인상 표현에 주력했다.

이보다 앞서 운보 김기창(1913~2001)이 한국화된 예수님의 일생을 그렸는데, 워낙 뛰어난 필력과 재능을 갖고 있었기에 예수님 일생의 여러 장면을 모두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한국전쟁 중에 그려진 작품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는 간음한 여인을 앞에 두고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인데, 조선시대의 환경과 복식을 통해 실제 우리가 그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다. 그는 이 작품뿐 아니라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화면 처리로 한국적 성화의 전형을 창안해 냈으며, 성화뿐 아니라 바보산수나 풍속화 등을 통해 여러 한국적인 이미지를 창출했던 발군의 작가였다.
요즘의 한국 작가들은 이런 사실적인 인물화풍에서 벗어나 보다 현대적이고 반추상적인 기법으로 작품을 많이 하고 있으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화풍으로 이런 작품들을 재음미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이 어떻게 표현되었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사야서에 나오듯,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이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그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그 사랑을 삶 가운데 행하는 것이리라(사 53:2~9).


- jungheehans@hanmail.net

장운상, 한복 입은 예수, 1962, 서울 YMCA
김기창,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1952~53, 작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