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바울이 아끼던 동역자 디모데의 가족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외에도 아버지와 두 누이가 있었다. 학자들은 “너는 겨울 전에 어서 돌아오라 으불로와 부데와…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딤후 4:21)에 나오는 부데가 바로 그의 부친인 푸덴 또는 푸덴데를 일컫는다고 본다. 푸덴은 바울이 로마에 가서 처음으로 안수한 인물로서, 원로원 의원이었다고 한다.
푸덴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푸라세데(Prassede)와 푸덴지아나(Pudenziana)다. 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네로 황제에 의해 희생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시신을 깨끗이 닦아 장례를 치러 줬고, 이로 인해 나중에 처형됐다고 한다. 후에 교황이 푸덴의 집터에 교회를 세운 것이 현재 로마에 있는 성 푸라세데 교회와 성 푸덴지아나 교회다.
성 푸덴지아나 교회는 기원 후 390년에 조성됐고, 안쪽에는 유명한 <권좌 위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벽화와 디모데의 두 누이와 바울과 디모데의 얼굴들이 벽화로 표현돼 있다. 먼저 디모데의 두 누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해 성모 마리아의 좌우에 서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이밖에 순교자들의 피를 닦아 주고 시신을 안치하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마리아의 좌우에 다소곳이 서 있는 두 자매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답다.
바울과 디모데의 그림에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몸을 굽히고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으며, 디모데가 얼굴을 바울에게로 숙이고 의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이런 표현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것이다. 바울이 설교하는 장면이나 무리에 둘러싸여 있는 장면은 많지만, 이와 같이 안수를 하고 또 동역자와 함께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은 흔치 않다.
바울과 디모데가 그려진 벽화 위로는 그들의 부친이 바울로부터 안수를 받는 장면도 그려져 있다. 바울로 인해 이 집안은 모두 하나님을 믿게 되고 큰 은혜를 받게 됐다. 디모데의 마지막 순간은 잘 알 수 없지만 바울을 따라 수많은 전도 여행에 참여했으며, 아버지와 두 누이는 회심한 뒤 순교자들을 돌보다가 자신들도 순교당하는 삶을 살게 됐다. 그리고 바울과 그들로 인해 기독교가 유럽에 퍼져나가는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바울의 전도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마치 강물이 발원해 골짜기를 타고 하류로 끝없이 흘러가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물을 마시게 했던 기적과 은혜의 역사였다고 한다면, 이 교회의 벽화들은 이미지로 보는 생생한 현장의 모습이다. 바울과 디모데가 친근하게 서 있는 장면은 이 벽화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4세기에 세워진 교회 위에 8세기에 증축된 성 푸라세데 교회에는 예수님과 제자들, 여성 순교자들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처리돼 있다. 또 그리스도인들을 묶어 놓고 때리던 빌라도 총독의 마당에 놓여 있던 돌기둥을 교회 내부에 옮겨다 놓았다. - jungheehan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