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중세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때라 성경을 양피지에 필사하곤 했다. 그렇게 전해 오는 필사본 중에 시리아의 자그바 성 요한 수도원에 있던 라불라 수도사가 시리아어로 필사한 성경 <라불라 복음서>에는 이 시기의 성화를 잘 보여 주는 14장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586년에 그려진 이 성화들은 6세기의 회화적 표현을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성령강림에서는 머리 위에 불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성령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행 2:3)으로 묘사된 말씀을 표현한 것으로, 이후 성화에 나타나는 이러한 표현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책형’이라는 주제도 여기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물론 지금은 일반화된 표현방식이지만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4장의 삽화 가운데 여기서는 두 장면만 보고자 한다. 왼쪽의 그림은 <십자가 책형>과 <그리스도의 부활> 장면이 나눠져 있다. 위의 그림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의 모습으로 좌우의 강도들과 함께 묘사돼 있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돌아가심을 확인하는 병사들과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지려 하는 병사들도 표현돼 있다. 왼쪽으로는 마리아가 매우 슬픈 얼굴로 바라보고 있으며,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그려져 고풍스러운 표현을 보여 준다.
아래 그림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해 두 여인에게 나타나심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따로 나타나셔서 손대지 말라고 하시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한 화면에 여러 번 등장하는 고식(古式)을 보여 주고 있다. 표현기법이 매우 서툴러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믿음으로 정성껏 그린 6세기 화가의 마음만은 충분히 느껴진다. 후대에는 모두 일반화됐지만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성경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시도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리라.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나고 드디어 승천하시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날개가 매우 큰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오르는 예수님은 수염을 기르고 위엄을 보이고 있다. 그 아래에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권위를 갖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이제 막 시작하는 새로운 한 해가 이 복음서에 그려진 바와 같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의 은혜로 가득한 아름다운 날들이 되기를 바라며, 용혜원 시인의 기도로 시작하고 싶다.
새로운 해 / 새로운 날들이 열려지고 있습니다.
삶의 개혁자인 예수여! / 이 한 해를 인도하옵소서!
목수이신 당신의 손길로 / 깎아야 할 곳은 깎아내어 주시고
잘라야 할 곳은 잘라내어 주시고 / 다듬어야 할 곳은 다듬어 주시고
못박아야 할 곳은 못 박아 주시사 / 우리의 영육을 새롭게 하소서
- 용혜원, 「삶의 개혁자 예수」 중에서
<십자가 책형>과 <그리스도의 부활>, 586년,
피렌체 메디치 라우렌지아나 도서관.
<그리스도의 승천>, 586년, 피렌체 메디치 라우렌지아나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