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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의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말은 우리의 삶이 늘 하나님의 시선 아래에 있음을 알고, 그에 맞는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야 함을 말한다. 성경에서 이 용어가 사용된 곳은 사무엘이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삼상 12:3)라고 말한 대목이나,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 등의 말씀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모두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한 치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설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자녀 삼아 주신,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오랜 세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작가들의 손길을 통해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삶 속에 나타난 모습들로 표현됐다.
20세기 전반기의 뛰어난 기독교미술 작가인 조르쥬 루오(1871~1958)는 고통받는 여러 유형의 인간들을 그렸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베로니카의 얼굴 등을 통해 고뇌에 깊이 젖은 모습을 그렸다. 물론 무겁고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라 그 안에서 성스러움도 배어나고 있다.
그의 작품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는 빌라도 총독이 군중들에게 “이 사람을 보라”고 했을 때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조용함, 그리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면서도 고통을 참으시는 인고의 모습이 강하게 표현돼 있다. 특히 굵고 거친 검은 테두리 윤곽은 화면에 비장함을 더하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차용한 이 기법은 일반 회화에서도 효과적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현대 작가 양승희의 작품 <하나님 형상>(Imago Dei) 또한 작가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이미지가 잘 표현돼 있다. 다양한 색채와 번지기 기법 속에 드러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감람산에서 기도하며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고통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작가는 “퀭한 눈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분의 외로움을, 강한 색감은 고통의 잔을 옮기길 바라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겠다는 치열함을 드러내고 싶었다”라고 제작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우리의 불순종과 배반을 참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참고 또 참으시는 결연함이 굳게 다문 입술에서도 느껴진다.
우리가 이해하고 느끼는 그분의 고통을 작가들이 좀 더 다른 기법이나 감각으로 표현함으로써 예수님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시도는 분명 이전의 가시관과 일그러진 얼굴의 예수상과는 다른, 보다 심리적인 접근이다. 물론 어떤 경우라도 주님의 그 강렬한 고독과 고통 그리고 비장함으로 표현되는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우리의 제한된 인식으로 모두 다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 죽음이라는 속죄의 제물 되신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이런 작품들을 통해 조금이라도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jungheehans@hanmail.net


조르쥬 루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1952, 바티칸 미술관

양승희, <하나님 형상>(Imago Dei), 2010, 작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