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나서 표적을 제일 처음 보이셨던 가나의 혼인잔치요 2:1~11는 그림 주제로 많이 사용된다. 요한복음에서 ‘표적’이라고 부르는 7개의 기적 중에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님이 가나 지방에서 열린 어느 결혼식에 가셨는데,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만다.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 연회장에게 떠다 주라 명하신다. 하인들이 그 말씀대로 행하자 물이 모두 질 좋은 포도주로 변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깨닫게 하는데, 우선 예수님이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신다는 것이다. 흥이 깨질 수 있는 연회를 예수님이 포도주를 채워 주심으로 다시 살리신 이 이야기는 천국 잔치를 상징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오신 것이 힘든 이 세상에서 잔치를 맞이한 것과 같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벨기에 안트워프의 화가 마르텐 드 보스Marten de Vos, 1532~1603는 이 주제를 화려한 분위기의 연회 장면으로 처리했다. 중앙에 예수님을 두고 그 뒤에 마리아를 배치하면서 마리아가 한 하인에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예수님 앞에는 성경에 나오는 대로 6개의 물항아리가 그려져 있는데 매우 화려한 모습이다. 이것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뒤에는 연회의 참석자들이 보이는데, 왼쪽에 신랑과 신부가 있고 먼 뒤쪽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보인다. 손님들 중에 터번을 쓴 사람도 섞여 있어 이국적 분위기를 살리려 한 화가의 노력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입고 있는 의상은 르네상스 당대의 호화로운 복장이며, 신부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은 당시 안트워프의 관습을 반영한 것이다.
마르텐 드 보스는 이태리의 베네치아에서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의 지도 아래 미술을 공부했다. 이 그림의 화려한 분위기와 인물 배치에서 틴토레토와의 관련성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등장인물의 시선을 예수님에게로 향하게 한 것과 화면 전체에 흐르는 고전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는 마르텐이 1590년대 당시 안트워프 최고의 화가로서 누린 명성을 느끼게 해준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공생애 최초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고, 순종했던 하인들만 그 기적을 직접 보고 기적의 근원 되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기쁨을 누렸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는 가감 없이 말씀대로 믿고 따르는 자만의 것이라는 순종과 실천의 측면이 강조된다.
이 그림은 안트워프 성당의 술집 주인들을 위한 제단화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의미는 좋은 포도주를 권하는 것이 아니고, 잔치를 즐겁게 만드시는 예수님과 그분께 순종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를 강조한 것이다. 또한 이 내용 다음에 나오는, 잡상인을 내쫓고 성전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을 함께 드러내는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2009년에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 모든 삶이 새로워지고, 나의 부족함이 채워지며, 말씀을 그대로 따른 하인들의 순종을 배워 주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기쁨이 쌓여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