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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남은 과업에 대한 우리의 부르심

과월호 보기 이현수 선교사(프론티어스)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고백이 있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그것을 고백했던 유대인은 얼마나 됐을까. 그분을 따랐던 제자들조차 이러한 믿음을 고백하기는 했지만(마 16:16), 예수님께서 유대인은 물론 미전도종족이었던 이방인들을 위한 분이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닫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소리 질러 간청한다. 이 여인은 율법으로는 더러운 여자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마 15:11)에 의하면 그녀의 정결함은 그녀 속에 있는 것으로 판단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불결한 여인의 접근을 제지한다(마 15:21~23).
이런 아둔한 제자들의 모습에 예수님께서는 퉁명스럽게 답하신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미전도종족 선교에 대한 의지를 도전하셨던 사건이다. 예수님께서는 부르심에 한 번도 흔들리신 적이 없으셨다. 그 부르심은 이스라엘을 넘어선 열방, 즉 미전도종족을 향한 것이었다.
바울은 예수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야망이라고 분명히 밝혔다(롬 15:20). 처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부터 바울의 소명은 이방인을 위한 삶이었다. 이방인 중에는 그가 싫어하고 저주하는 사마리아인도 포함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화적인 자부심과 편견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명확한 부르심이 있었다.
이러한 바울의 부르심은 그의 영적 통찰력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엄청난 고난과 핍박을 경험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풍성함을 간과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고전 16:9).
부르심의 눈으로 바라본 사역은 그야말로 무한대였다. 소명이 명확했기에 많은 어려움과 좌절이 놓여 있는 현실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날 여러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울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래야 우리가 남은 과업을 이룰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