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추천하는 책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죠이선교회 역간)의 원제목은 『Down-to-Earth Spirituality』다. 번역하자면 ‘성육신적 영성’, ‘이 땅에 뿌리내린 영성’이다.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 『현대인을 위한 생활영성』 등과 같이 이른바 시장바닥(market place) 신학, 평신도 신학으로 널리 알려진
폴 스티븐스의 야곱 묵상집이다.
한 시대에 특정 주제와 관련해 모든 이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전문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 폴 스티븐스는 그런 차원에서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에는 그가 40년간 성경을 묵상하며, 야곱에 대해 시장바닥 영성으로 졸여낸 고농도의 엑기스가 녹아 흐른다.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져 내려가는 창세기 족장들의 역사는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특히 야곱은 더욱 그렇다. 그에게는 우리와 같은 연약함, 동경, 갈망, 모호함, 그리고 궁핍함이 있다. 그는 잘 다듬어진 성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닿은 진짜 죄인이다. 종교적인 활동이 아니라 삶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발견된 자이다.
그러나 신앙의 선진들에게서 우리가 꼭 전수받아야 할 소중한 유산이 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그런 면에서 접근하게 되면 창세기는 신앙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다. 하나님께 발견되고 생명으로 가득 차기 위해, 어떤 다른 장소에 있거나, 다른 가정에서 성장하거나, 다른 특별한 관계를 가지거나, 다른 일터에 있거나, 다른 조직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영성은 특별한 장소, 특별한 사람, 삶의 어떤 경계선 안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심지어 따분하기까지 한 우리 삶의 작은 부분들, 가령 아침에 일어나고, 먹고, 옷 입고, 성적 욕구를 다스리고, 관계를 맺고, 부르심을 좇아가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찾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신혼 첫날밤과 임종 때에도 우리를 만나 주신다. 영성은 우리의 삶의 어떤 특정한 구역이 아니라, 매일 일상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다. 이 땅에 뿌리내린 영성을 지닐 때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빚으신 원래의 온전한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