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탐구 박원범 목사(사랑의교회)
가짜 뉴스가 넘쳐 나는 시대에 놀라운 소식을 접하면 우리는 바로 이렇게 묻는다. “이거 팩트야?” 달콤한 거짓은 잠시 위로를 주지만 결국은 무너진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은 우리를 바른길로 이끈다.
성경 속에도 권력자 앞에서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하나님의 팩트를 선포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선지자 나단이다. 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확실한 언약을 선포했고, 죄를 숨기려는 다윗에게 냉정한 팩트를 전했으며, 무너진 왕에게 다시 은혜의 팩트를 일깨워 줬다. 나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단, 하나님의 언약을 선포하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평안을 주셔서 나라가 안정되자,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한다. 자신은 백향목 궁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가 천막에 있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말씀하신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삼하 7:5).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성전을 짓는 것이었는데, 이는 인간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사실을 선포하신다. 성전을 짓는 이는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왕조를 세우시겠다는 언약이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께 무언가를 해 드려야 한다는 조급함에 빠진다. ‘예배를 더 잘 드려야지’, ‘봉사를 더 많이 해야지’라는 열심이다. 하지만 신앙의 출발은 ‘내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팩트이다.
나단, 불편한 팩트를 말하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다. 권력으로 모든 것을 덮은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죄를 보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신다. 가난한 자의 하나뿐인 암양을 빼앗은 부자의 이야기였다. 다윗은 그 이야기에 분노하며,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선언한다. 그때 나단은 왕 앞에서 담대히 말한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
이는 하나님 앞에서 다윗의 죄가 드러났다는 선언이다. 동시에 그를 회개로 이끄는 은혜의 시작이었다. 다윗은 불편한 팩트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참회시(시편 51편)를 지으며 눈물로 회개한다.
우리도 말씀 앞에서 팩트를 들어야 한다. 불편한 지적, 성령님의 책망, 설교 속 찔림, 믿음의 동역자들의 권면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영혼을 살리는 팩트이다. 불편한 팩트는 아프지만, 영혼을 새롭게 한다.
나단, 은혜의 팩트를 말하다
다윗은 죄의 대가로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잃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 밧세바는 또 다른 아들을 낳았다. 이는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이다. 나단은 그 아이에게 또 다른 이름인 ‘여디디야’를 전했다. 그 뜻은 “여호와께 사랑받는 자”이다(삼하 12:25).
다윗 왕권이 세워져 가는 사무엘하 1~10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은혜의 메시지를 전하신다. 죄와 그로 인한 징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의 책망은 단절로 끝나지 않는다. 심판 뒤에는 언제나 은혜의 약속이 있다. ‘여디디야’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윗과 그의 가문을 사랑하신다는 은혜의 팩트였다.
우리 역시 죄와 실패로 무너질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너는 여디디야, 사랑받는 자야.” 나단은 단순히 죄를 지적하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은혜의 팩트를 알려 주는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팩트에 붙들리는 십대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