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히스기야가 확장시킨 예루살렘 서쪽
예루살렘에 도착한 순례자들을 처음 맞는 광경은 예루살렘 서쪽 ‘다윗의 망대’다. 이 망대까지 성을 확장한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이다. 예루살렘 서쪽 성벽을 바라보면, 주전 701년 앗수르 산헤립왕의 침략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앗수르 군대는 공성 망치를 만들어 성을 부수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전쟁을 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성벽이 필요했다.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히스기야 시대의 ‘넓은 성벽’은 그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넓은 성벽은 다윗 망대로 들어가는 욥바 문에서 유대인 지역으로 300m 정도 내려간 곳에서 발견됐다. 히스기야는 다윗성과 성전산밖에 없는 예루살렘 서쪽 언덕을 둘째 구역이라 불리는 신도시로 만들어 성의 넓이를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공성 망치를 견딜 수 있도록 두께 7m의 성벽을 3.8km에 걸쳐 건설했다. 서쪽의 성벽을 얼마나 급하게 쌓았던지 주민들의 집을 부숴 그 돌로 성벽을 쌓은 흔적도 보인다.
사람의 준비보다 기도로 준비되기
히스기야의 넓은 성벽 근처에는 당시 문화와 지형 모형을 전시해 둔 작은 박물관이 많다. 그중 솔로몬이 열었던 ‘제1 성전 시대’의 소박물관에는 히스기야 시대의 항아리 손잡이가 있다. 여기에 ‘왕에게 속한 것’이라는 인을 쳐서 전쟁 대비 물자임을 표시해 뒀다. 이를 통해 히스기야가 성벽과 군수 물자를 얼마나 잘 준비해 놓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준비는 산헤립이 단행한 단 한 번의 침공에 의해 무참히 무너졌다. 결국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결과, 앗수르에 역병이 임해 18만 5천 명이 하룻밤에 죽음으로써 유다는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이 표 나게 준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향한 침묵의 기도와 경건의 준비가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전쟁을 대비한 히스기야 터널과 실로암
앗수르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물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상수원 중 가장 중요한 곳은 기혼 샘이었는데, 이 샘은 성 밖에 있어 전쟁에 취약했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샘의 입구를 막고 터널을 뚫었으며, 남쪽 연못을 확장하고 그 주변에 성벽을 쌓아 두 성벽 사이에 실로암이라는 연못을 만들었다(참조 사 22:11).
기혼 샘에서 히스기야 터널을 따라 들어가면, 물이 흘러내리도록 터널의 높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20분가량 들어가면, 주전 702년 작업자들의 감격이 고스란히 기록된 비문이 남아 있다. 원본은 박물관에 있지만, 사본만으로도 그 감격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총 533m의 히스기야 터널을 나오면 실로암 연못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눈을 씻으라고 말씀하신 연못이다. 예수님 시대에 정결 예식을 행하는 장소로도 사용됐던 실로암 연못은, 전쟁의 위협을 대비한 상수원 시설이다.
우리도 영적 전투를 위해 경건의 터널을 파고 성령의 생수가 솟아나는 실로암을 향해,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