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다윗의 노래가 지어진 피난 동굴
다윗은 해변 길에 있던 가드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미친 척하고 빠져나와 아둘람굴로 피했다. 이곳에 그의 가족을 비롯해 원통한 자, 빚진 자 등 400명이 내려와 모였다(삼상 22:1~2). 아둘람은 나무가 무성한 언덕이라서 얼핏 보면 400명이 머물 동굴이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정상까지 올라가 살펴보면, 이스라엘 시대부터 로마-비잔틴 시대까지 사람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있다. 일부 건물 옆과 아래에는 물을 보관하는 큰 저수조가 있고, 그 옆에는 동굴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입구가 있다.
동굴에 들어서면 400명 넘게 모여 예배할 수 있는 큰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는 올리브를 파쇄할 때 쓰는 큰 연자 맷돌이 있고, 예배드릴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도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굴이 이어지는데, 몹시 깊고 복잡하다.
다윗은 이곳에 머물며 시편 57편을 기록했는데,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참조 시 57:7~9) 같은 주옥 같은 시구가 나온다.
피난처 동굴이 많은 아둘람 공원
아둘람성 서쪽 쉐펠라 지역은 아둘람 공원으로 조성됐다. 동서로 15km 정도 되는 아둘람 공원에는 수많은 동굴이 있다. 주거용으로 만든 동굴과 비둘기를 키우는 동굴인 콜롬바리움도 있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주후 135년 로마에 대항해 마카비 독립 혁명 시대에 만든 항전용 피난처 동굴이다.
이 동굴들에는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유대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종교인이나 유대인 학생들의 현장 학습장으로 사용된다. 신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함께 들어가, 긴 동굴 중간중간에 마련된 공터에서 다윗의 노래를 찬양하곤 한다.
기업 무르는 자가 된 유다, 다윗, 예수님
야곱의 아들 유다는 도단에서 요셉을 팔아 넘긴 후, 헤브론산지에 살다가 아둘람에 내려와 가나안 여인과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다. 그의 삶은 가룟 유다와 비슷하다. 두 아들이 죽고 마지막 남은 셋째까지 위험해지자, 그는 며느리 다말을 탓하며 그녀를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그러자 다말은 창녀로 변장해 기업 무름의 다음 차례인 시아버지와 동침하며 기업을 잇고자 했다. 수치스러운 동침이었지만, 명문가를 이루려는 다말의 ‘기업 무름’ 정신은 유다를 일깨웠다. 그 결과, 요셉을 팔았던 유다는 막내 베냐민이 팔리는 위기 상황에서 기업 무르는 자가 되겠다고 자원한다.
이후 유다 족속 다윗은 사울왕과 블레셋을 피해 아둘람굴에 왔다. 그는 동족과 이방인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오합지졸 400명과 함께했다. 큰 부담과 책임이 지워졌지만, 다윗은 시편 57편의 찬양에서 보듯 자신의 시선을 여호와께로 향해 고난을 훈련의 기간으로 바꿨다.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의 기업을 세우는 왕이 됐다. 그리고 유다 족속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업 무르는 자로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