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지리

2026년 06월

바울이 운동 경기로 믿음을 배운 이스트미아

성경지리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고린도운하 중심 도시 이스트미아

고린도운하에서 남쪽으로 5km 지점, 고린도에서 동쪽 10km에 있는 ‘지협’이란 뜻의 이스트미아는 고린도운하의 중심 도시다. 이스트미아 유적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박물관을 거쳐야 한다. 이 박물관에는 바울이 머리를 깎았던 겐그레아의 이시스 신전에서 발굴된 중요한 유적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왼쪽에는 큰 포세이돈 신전 터가 있다. 이 신전은 고린도 외곽에 있는 가장 큰 신전이었다. 최초의 포세이돈 신전과 제단은 주전 650년에 완성됐다.

그리고 범그리스 경기를 위해 건설된 최초의 경기장 자리에 영웅 멜리케르테스-팔라이몬을 위한 신전이 동쪽과 남동쪽에 추가됐다. 신전 북동쪽에는 음악 경연 대회를 위한 원형 극장이 있다. 그 옆에는 그리스 목욕탕 위에 세워진 대규모 로마 목욕탕 시설이 발굴됐다. 목욕탕에는 수영장과 모자이크 룸이 발견됐는데, 이곳에 돌고래를 타고 있는 팔라이몬이 다수 보인다.

팔라이몬은 베니게의 두로 출신 왕자인 코모두스의 외손자이자, 시시포스왕의 친조카였다. 그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저주로 쫓기던 어머니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팔라이몬이라는 돌고래 타는 소년(마린보이)이 됐다.

로마인들은 팔라이몬을 포르투누스(항구의 신)와 동일시했다. 그의 시체를 시시포스 왕이 고린도만에서 거둬 이곳에서 장례를 치러 줬다. 이후 팔라이몬을 기념해 이곳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고린도인이 주최한 이스트미아 제전

고대 그리스의 4대 경기는 고린도를 중심으로 이스트미아, 네메아, 올림피아, 델피에서 열렸다. 특히 이스트미아 제전은 고린도에서 주최한 만큼 고린도인에게 중요한 경기였다.

주전 582년부터 시작돼 아테네의 테세우스가 적극적으로 경기에 참석하고, 우승자에게는 조각상, 칭송의 노래, 소나무 면류관을 수여했다. 아테네 시민이 우승하면 100드라크마의 상금을 주는 등 크게 번성했으며, 플라톤도 이 경기에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바울, 운동 경기를 믿음에 비유

바울은 주후 49~52년경에 고린도를 방문해 2년마다 열리던 이스트미아 제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고린도전서에서 신앙생활 태도를 종종 운동 경기에 비유해 설명한다. 바울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는 말을 통해 이스트미아 제전 공식 경기인 달리기를 인용한다.

또한 그는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고전 9:26)라는 언급을 통해 당시 이곳에서 열렸던 달리기와 권투, 판크라티온(종합 격투기)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당시에 주어진 면류관을 보며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고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