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3년 04월

부모와 자녀, 조금 더 가까이!

과월호 보기 김지태 목사 (부산 영안교회)

부모와 자녀, 조금 더 가까이!

“우리 엄마는 이중인격자에요!”,
“전 저희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무능력해 보여요!”
“우리 애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여요! 공부에 도통 관심이 없어요!”

 

부모와 자녀는 평행선?

종종 청소년들을 만나 대화하거나 부모님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들이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부모님에 대해 ‘다중인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에 대해 ‘꼴통’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솔직히 이런 대화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왜냐하면 이러한 부정적인 표현들이 결코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해서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청소년들이 부모님에 대해 가장 어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에 따라 부모님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통화할 때는 친절하고 상냥하다가도 직접 마주하게 되면 늦게 들어온다고, 놀기만 한다고, 공부 안 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러니 다른 친구의 부모님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편인데, 유독 자신의 부모만은 엄격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부모님들은 또 어떤가? 자기 자녀를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라고 표현한다. 성적은 늘 뒤처지고 공부 이외의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들여다보면 딴 짓을 하고 있고, 자녀들의 손과 스마트폰은 마치 한 몸처럼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이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 차이를 설명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와 자녀는 마치 평행선처럼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로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부모와 자녀는 애증의 관계처럼 평생 불편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일까?

 

서로를 인정하기!
청소년들이 부모와 긍정적인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는 서로를 ‘부모와 자녀’라는 타이틀 속에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고유의 특성을 지닌 한 사람, 즉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며 존중하는 것이다. 솔직히 자녀를 이해하는 부모님도 많지는 않지만, 부모를 이해하는 자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부모이기 때문에, 자녀이기 때문에 해야 할 것들과 서로에 대한 기대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세상에는 완벽한 자녀도 없지만, 완벽한 부모도 없다.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것은 좀 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방법 중의 하나로 ‘과거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부모가 부모이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였는지, 어떤 환경 속에서 성장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 할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가정의 둘째 아들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던, 큰형님의 그늘 아래서 힘겨웠던 아버지의 학창 시절은 내가 청소년 시절에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들을 충분히 이해시킬 만큼 중요한 이야기였다. 이 과거 여행은 자신의 이름을 ‘○○○의 엄마’로 바꾸어 버린 한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반복해야 하는 한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여행코스이다.

 

부모님을 설득하라!
부모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위한 두 번째 방법은 부모님을 ‘설득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대화’이다. 그 어려움은 요즘 들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나 역시 최근 청소년들과의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면서 깊이 고민하다가,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먼저는 SNS의 발달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거의 모든 대화를 SNS를 통해서 한다. 최근 충격적이었던 경험은 4명의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는데, 나를 빼놓고 나머지 4명이서 카톡으로 대화를 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타인을 무시하는 경향’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을 넘어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학생들과 종종 말다툼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대화를 하다보면 문제가 해결되기도 했는데 요즘은 이조차도 어려워졌다. 
이런 현상은 청소년들이 속한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정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나마 시대를 앞서(?)가는 부모님들은 SNS를 배워서 자녀와 대화하려고 노력하시는 분들도 있으나,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청소년들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그 방법은 부모가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고, 영원히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설득해서 이해시키고 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자신들 안에 담겨 있는 생각들을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요즘만큼 청소년들의 생각이 통제받는 시대가 없었다. ‘성공주의’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청소년들의 자유로움은 끊임없이 침해당하고 억압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른다.
만약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은 동일한 인생 목표와 비슷한 스펙과 천편일률적인 외모를 지닌 채,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부모는 자녀를 잃고, 자녀는 부모를 잃게 될 것이다.
부모님과의 대화를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말기를 바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부모와 나누어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할 것이고, 손발이 오그라들지 모르지만 금방 익숙해지면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평행선이 어느 순간 한 지점으로 모아지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