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아, 짜증 나!”
“내가 노크하라고 했지? 아, 짜증 나!” 어느덧, 훌쩍 커버린 자녀는 아빠가 갑자기 열어젖힌 문 뒤에서 소리친다.
언제부터인지 자녀들은 자기 방을 달라고 하고, 자기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고 아빠, 엄마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 엄마가 옆에 없으면 잠도 못 자던 아이들의 입에서 짜증 섞인 소리가 난다.
자녀들이 크면 클수록 아빠, 엄마에게 늘어나는 것은 사랑과 의리가 아닌 짜증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과거 서로를 사랑했던 이유가 이제는 짜증의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빠, 엄마도 짜증이 나는 게 현실이다.
짜증 나는 이유
밴더빌트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랜돌프 블레이크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가 크지는 않아도 사람들에게 짜증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고 그 주파수를 연구했다. 그런데 짜증을 유발하는 주파수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500~ 2000hz였다. 어른들도 십대와 같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난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은 근접학(proxemics)이라는 학문을 통해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공간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밝혀냈다. 그는 사람들이 타인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편안한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물리적인 거리가 침범당할 때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자녀는 사춘기가 되면, 부모님에게 자기방어를 요구하고, 자기 공간에 대한 거리 유지를 위해 노크를 요청한다. 그리고 그 공간이 침범당할 때, 짜증을 낸다. 하지만 어른들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나이가 됐다. 그리고 그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자녀들처럼 짜증이 난다.
하와이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일레인 해트필드는, 사람들이 짜증을 내는 이유가 공정성 이론(equity theory)의 원칙에 따라 증가한다고 말했다. 대인 관계나 조직에서 공정한 기회나 공평한 처우를 받지 못할 때 짜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만일 공정성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이득이나 혜택이 자신에게 기운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반대로 공정한 기회나 처우를 받지 못하면 짜증이 폭발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나가는 소방차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저녁 무렵 놀이터에서 십대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 내가 싫어하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소리에 짜증이 난다.
또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자기보다 더 잘나가는 것을 볼 때, 노안인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때,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기 힘들 때, 갑자기 어깨가 시리고, 손목이 아프고, 무릎이 욱신거릴 때,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을 때 등 아빠, 엄마도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날 나이!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창 37:8).
요셉의 형들은 짜증이 났다. 한참 어린 동생 요셉이 자기들보다 높아져서 자신들을 다스리겠다는 선언에 화가 난 것이다. 하지만 10명의 형들을 더 화나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태도였다. 아버지가 자꾸 요셉을 싸고도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창 37:4).
요셉의 형들은 불편했다. 하지만 그들의 불편은 아직 분노에 이르지는 않았다. 불편한 상태가 이어지며 공정하지 않고 편애로 가득한 아버지에 대한 불평은 짜증으로 응축됐다.
물론 짜증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사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감정의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한다.
짜증은 분노와는 다르다. 짜증은 분명 독립적인 감정의 형태를 갖는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이 감정은 모든 불공정과 편애, 공평한 처우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억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빠, 엄마에게 짜증은 최소한의 분풀이다. 십대여! 아빠, 엄마도 이제 짜증이 날 나이다!
참고 도서: 《우리는 왜 짜증 나는가》, 조 팰카, 플로라 리히트만 저,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