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사랑의교회)
엄마에게 아들은 얄미운 나비다!
“엄마가 자꾸 말 시켜서 귀찮아요. 저는 말하기 싫거든요.”
“엄마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급식에 무슨 음식이 나왔는지 왜 궁금한지 모르겠어요”
십대 아들은 엄마가 건넨 이야기가 귀찮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엄마의 이야기가 모두 잔소리로 둔갑해 자신을 옭아매는 느낌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건네는 말에 귀를 닫고, 엄마가 건네는 ‘엄카(엄마 카드)’에만 손을 내민다.
“목사님! 아들이 이제는 제 말도 안 들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목사님! 오늘 정말 행복해요. 아들이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네요.”
십대의 침묵에 한참 동안 자책하던 엄마는 아들이 던진 말 한마디에 그저 행복하다. 아들은 엄마에게 ‘얄미운 나비’다!
그 아들 작곡, 그 엄마 작사!
2019년에 <벤 이스 백(Ben is Back)>이란 영화가 상영됐다. 약물 중독으로 재활 치료소에 있던 문제아 아들 벤이 크리스마스에 갑작스럽게 집에 돌아와서 엄마 홀리와 24시간을 함께 지내는 것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아들은 끊임없이 문제적 행동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가치 없는 존재인가를 엄마에게 보여 준다. 하지만 엄마는 “난 널 포기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끝까지 아들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가족 치료의 전문가인 존 가트맨 박사는 ‘감정 코칭’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서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적 순간을 좋은 기회로 삼아 서로 공감하고 경청하며, 감정을 서로에게 잘 표현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십대는 분명 감정적이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기보다는 감정 섞인 표정이나 행동들로 대변한다. 그러한 감정 기복은 음표가 돼 삶의 오선지에 새겨진다. 하지만 엄마들은 그 음표가 낯설고 어렵다. 그래서 엄마들은 그 음표 밑에 엄마의 생각으로 작사하기 시작한다.
결국 아들은 작곡하고, 엄마는 그 곡에 작사함으로 하나의 노래가 완성된다. 음과 가사가 잘 맞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일 때가 많다. 어울리지 않는 가사가 붙은 악보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노래는 노래다. 그 노래 자체가 바로 소망이다.
엄마도 마음이 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창 37:2).
야곱의 가정에는 4명의 엄마와 12명의 아들이 있었다. 성경은 그 속에 치열한 경쟁과 다툼이 있었다고 말한다. 두 명의 엄마 라헬과 레아의 구도 속에서 요셉은 형들과 부정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요셉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여느 십대처럼 성숙하지 못했다. 아빠, 엄마 앞에서 형들의 잘못을 말하며, 안하무인 같은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요셉은 확실히 사춘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야곱과 요셉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아마도 형제들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안 좋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
하지만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 그가 보여 준 모습은 더 이상 아버지의 편애 속에서 자란 철없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부모님께 듣고 배운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고, 그 말씀을 따랐다.
분명 십대의 요셉도, 그의 형들도 감정적이었을 것이다. 감정의 폭풍으로 휘몰아치는 십대의 무심함과 침묵이 얼마나 부모님의 가슴을 찢었을까! 그렇게 형제들의 다툼으로 요셉이 사라졌을 때, 야곱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죽었다고 믿었던 아들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빠, 엄마도 마음이 있다. 십대로 인해 쉽게 상처받고, 찢겨지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자녀들 때문에 너무 행복한 마음이 있다. 십대가 부모님의 마음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