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아빠, 엄마는 서운하다!”
“퇴근하고 돌아가면 반겨 주는 가족이 없어요. 휴대폰만 보고 있어서 서운하더라고요.”
“어제 아내랑 언쟁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전후 사정도 들어 보지 않고, 엄마 편을 드는 거예요. 아빠인 제가 잘못했다는 겁니다. 분명 아내가 잘못했는데 말이에요.”
십대인 자녀와 중년기에 접어든 부모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오간다. 서로 사랑하고, 기대하는 만큼 부모의 마음에 불편함이 찾아온다. 중년이 되고 예민해진 아빠, 엄마의 마음에는 안 좋은 감정의 꽃이 핀다. 그 꽃 이름은 ‘서운함’이다. 이 서운한 꽃은 아빠, 엄마의 마음밭에 한가득 피어난다. 중년의 아빠, 엄마는 서운함으로 가득하다.
서운한 감정의 간격을 좁혀라!
2008년 배우 김혜자 씨가 주연으로 등장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을 챙기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희생하며 살아왔던 엄마의 모습을 그려 내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엄마 역할을 연기한 김혜자 씨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사라져 가는 현실 속에서 서운함이 폭발하는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하면서 엄마들에게 공감과 통쾌감을 선사했다.
드라마 속에서 엄마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는 딸에게 김혜자 씨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래 살아 봐라. 자식이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인지. 지금은 모르지, 부모가 아니니까!”
말리고 말려도 굳이 고된 인생길을 걷겠다고 고집부리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저 잘되라고 하는 건데, 저렇게 가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텐데… 왜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몰라줄까?’ 아랑곳하지 않는 자식의 모습에 엄마의 마음은 그저 서운하다.
심리학자인 에릭슨(Erikson)이나 헤비거스트(Havighurst)는 40대 부모 세대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다음 세대, 젊은이 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연결 고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중년 어른으로서 사회에서나 가족 안에서 존중과 존경, 인정받지 못할 때는 자신을 비하하는 모습을 갖게 되는데, 이는 ‘서운함’이라는 감정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서운함은 부모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고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중년의 부모와 십대 자녀 사이에서 나타나는 서운함의 간격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공경’과 ‘유순한 대답’이 필요하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2~4).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성경은 사춘기인 십대와 갱년기 초입에 들어선 중년기 부모 사이의 간격을 ‘공경’과 ‘유순한 대답’으로 채우라고 말한다. 하지만 갱년기 부모 세대에게 ‘유순한 대답’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님을 명예롭게 여기는 ‘공경’과 자녀를 인정해 주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유순한 대답’을 명령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셔서 지으신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심히 좋았다”라고 말씀하셨다(창 1:31). 인간을 창조하시고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넉넉히 만족해 하셨다. 십대는 부모님의 존재에 대해 만족해야 한다.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내 아버지께서는 10여 년 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훗날 깨달은 것은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도 항상 ‘좋았다’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인 내게 만족함을 줬고, 가족들에게 흡족한 세상을 허락했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물질이나 명예, 권위와 상관없이 아버지는 내게 공경의 대상 그 자체이다.
내가 아버지로 인해 심히 좋았던 것처럼, 십대도 아버지로 인해 충분하다. 십대에게는 부모님이 필요하고, 중년의 부모에게는 십대가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온전한 공동체를 이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