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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3월

십대, 한 달란트도 충분하다!

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1. ‘을’의 대접을 받는 ‘갑’인 십대!
“목사님, 제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학교에서 입시를 위한 추천서를 받았는데, 자신보다 실력이 없는 친구가 자신이 받고 싶은 학교의 추천서를 받고, 자신은 그보다 못한 곳을 추천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로 그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어떻게 제가 이번 봉사 활동에서 떨어질 수 있어요?”
교회에서 매달 가는 봉사에 많은 사람이 지원해서 제비뽑기로 참가 인원을 정하기로 했는데, 제비뽑기에 실패해 이번 봉사에 못 가게 된 것이다. 십대는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하며,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못한 교회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 일을 매우 부당하다고 여겼다.
세상은 왜 십대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주지 못할까? 충분히 사랑스럽고 사랑받기 마땅한 십대를 향한 세상과 교회의 반응은 차갑다. 오늘도 십대는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과 교회가 불만스럽다.


#2. 십대의 기만!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책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기를, 즉 사랑의 자연스럽고 적정한 대상이 되기를 열망한다”라고 말했다. 십대도 자신들이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이때 아직 철이 덜든 청소년이라면 자신의 말이나 행동과 상관없이 타인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그들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렇지 않은 척하는 것뿐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녔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이렇게 말한다. “첫 번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자기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다.”
우리는 자주 자기 자신을 속인다. 그러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자기가 자신의 내면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큰 자기기만은 없을 것이다.


#3. 십대, 소명의 길 앞에 서라!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4~15).
주인이 종들에게 “그 재능대로” 돈을 맡겼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열심히 일해서 받은 만큼의 돈을 벌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땅 속에 숨겼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그대로 가져왔다. 왜 그랬을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에게 이득을 남겨 주고 싶지 않았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마 25:24).
그는 주인이 자신의 가치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경은 “각각 그 재능대로”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남겼다고 기록한다. 결국 ‘한 달란트’는 주인이 생각하는 그의 재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종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주인에게 서운했는지도 모른다.
십대는 한 달란트를 받은 종과 같다. 십대 안에 존재하는 비교 의식은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자신을 기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남과의 비교를 멈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달란트’는 유대의 무게 단위로, 시대와 나라마다 조금씩 가치가 달랐지만, 구약 시대에는 약 34kg(3000세겔), 바벨론은 약 60kg, 신약 시대 헬라 계통의 달란트는 약 20kg이었다.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한 달란트는 약 20억 정도가 된다. 도대체 얼마나 위대한 재능이었기에 20억을 맡길 수 있었단 말인가?
주님께서는 십대에게 한 달란트밖에 맡기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한 달란트의 무게와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바라보지 마라!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에게도 그만의 길이 있다.
오직 주님만이 십대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계신다. 십대들이여! 하나님께서 각자의 재능에 따라 부르신 소명의 길 앞에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