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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십대, 쉬었다 합시다!

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1. 십대, 쉼!
“일주일 동안 푹 쉬면 좋을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어떻게 쉬어야 잘 쉬었다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에 십대들의 답은 ‘시간’에 집중됐다. 얼마나 오랫동안 쉬느냐가 십대들에게는 꽤나 중요한가 보다.
“방학하면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저에게 쉬는 것은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예요.”
또한 십대들은 쉼이라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십대들은 자신의 삶에 ‘nothing’을 넣어야 진정한 쉼이라고 여기면서도, 자신의 삶이 ‘something’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쉬어도 피곤하단다.
항상 피곤한 십대들은 지금 격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2. 십대, 제대로 쉬고 있는가?
2018년 대한민국 청소년의 여가 활동이나 쉼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통계청은 13~24세 청소년의 60% 정도가 ‘TV 시청’, 70% 정도가 ‘컴퓨터 게임, 인터넷 검색’으로 쉼을 채우고 있다고 보고한다.
자존감이 낮아진 십대들은 현실이 아닌 SNS나 게임을 통해서 ‘something’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싶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어떤 상황이든 십대들은 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 제대로 살고 있나?”
독일의 대표 문학가 괴테는 사람은 누구나 느닷없이 자신이 못마땅하고 타인에게 짜증이 나며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판단력을 잃을 때에는 잠시 일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스로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면 쉬어야 할 때인 것이다. 불안과 공허가 주는 삶의 균열을 다른 것으로 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십대들은 불안과 공허, 무기력 속에서 게임과 다른 것들을 ‘쉼’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오늘도 십대들은 피곤하다.


#3. 베드로, 쉬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육 시더라’’(행 10:9).
유대인은 구원이 자신들에게만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처음엔 예수님의 십자가 역시 유대인에게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을 위해서만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고 믿었다. 그래서 교회도 유대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교회를 위해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이 바빴다. 바쁜 사역에 지친 베드로에게는 쉼이 필요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행 10:12~13).
베드로는 너무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기도를 위해 오른 옥상은 천국이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지중해의 바람이 베드로의 피곤을 쓸어내리던 중, 그는 쉼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배고픈 그에게 부정한 음식을 권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베드로는 의아했다(17절). 쉼이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구원과 관계가 없다고 믿었던 이방인 고넬료에게 세례를 베푼 베드로는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그의 세계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복음의 능력과 십자가의 사랑이 유대인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과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선포로 베드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쉼은 황홀한 중에 나타나는 통찰(insight)을 주고, 이 통찰을 통해 베드로의 인생에 ‘전환’(changeover)이 일어났다. 세계관이 바뀌자 삶이 완전히 변화됐다. 쉼을 통해 더 위대하게 된 것이다. 
십대들은 ‘쉼’이 필요하다. 아무리 쉬어도 여전히 쉬고 싶은 신기루 같은 쉼이 아니다. 기도와 말씀이 있는 쉼은 십대의 삶을 위대하게 한다.
십대들이여! “쉬었다 합시다!”Q